2005.9
지난밤엔 자다가 머리가 아파 잠시 잠을 깨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나는 원래 고소의 느낌이 상당히 빨리 오는편이라 은근히 걱정이 된다.
내가 고소가 온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아니 히말라야 6,7 천미터 지역에서 한겨울을 보내고 왔다면서 당신도 고소가 오나?”
고소의 효과는 6개월이 지나면 제로가 된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히말라야 등반을 하는 친구들은 일년에도 몇 번씩 고산을 가야만 다음 등반에 지장이 없다.
그런데 몇십년이나 지났으니 고소에 대한 면역은 커녕, 힘이 딸려 걷기도 힘든 판이다.
이번 산행에 참가한 회원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박촌장이 나를 소개할 때 남이사는 에베레스트원정대 대장을 했고 우리나라 제일큰 산악단체의 전무이사를 했고, KBS, MBC등 방송출연을 밥 먹듯이 했다는 등 과장을 섞어 나를 소개를 하는 바람에 남들은 나를 산악계의 대단한 사람으로 인식을 한다.
잠시는 우쭐할지 몰라도 앞으로의 처신은 엄청 힘들어 진다. 힘이 들어도 힘든다 소리를 할 수가 있나, 고소가 와도 내색을 할 수가 있나 이제부터 나의 忍苦의 시간은 시작될 모양이다.
라이쵸타이라의 아침은 뜻밖에도 찬란한 햇살과 함께 시작이 되었다. 간밤에도 태풍의 진로에 대하여 큰 걱정을 하였는데 이게 무슨 축복이란 말인가?

오늘 일정은 타테야마 능선을 종주 한 뒤에 다시 산장으로 돌아와 짐을 들고 무로도 역으로 간 뒤 하산하여 도야마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온천지역까지 가는 일정이다. 그래서 산장까지는 2시 반 까지 도착을 해야 한다.
아침 8시, 도시락을 배급받아 배낭에 넣고 짐을 가볍게 한 뒤에 산장을 나서니 평풍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다테야마 산군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저멀리 무로도산장과 그넘어 잘록한 산능선 위에 이치노코시 산장의 모습이 아련하게 조망되는데 걱정이 된다. 언제 저곳을 올라가야 할런지....

그렇지만 시작은 항상 용감한법, 발걸음도 당당하게 우리의 일행은 마침내 일본 북알프스 산행의 첫발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라이쵸타이라에서 산책길을 따라 무로도 산장까지 가는 길은 평화로운 산책코스인데 길가에 핀 야생화들은 고원지대의 꽃이라 그런지 색상도 선명하고 모양도 뚜렷하다.
일행을 앞으로 보내고 꽃을 촬영하고 있는데 온이형과 같이 온 이회장이 내가 찍는대로 똑같이 사진을 찍는다. 김포공항에서 디카를 새로 샀는데 기능도 숙지가 안된 상황에서 꽃마다 사진기를 들이대며 꽃을 찍으니 온이형이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며 핀잔을 준다.
“야! 네가 무슨 꽃을 찍냐? 뒤떨어지지 말고 빨리와”
온이 형이 나에게 작은 소리로
“야! 저친구 항상 아슬 아슬하니 네가 책임져라”
처음보는 사람을 나보고 어떻게 책임지라는 얘기인지 이해가 안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를 이해 할 수가 있었다.
회사를 여러개 가지고 있어 회장 직함을 가지고 있는 이회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 있는 친구라는 느낌이 든다.
나에 대한 호칭도 처음에는“남프로”에서“남형”으로 했다가“남대장”으로, 나중에는“상태형”으로 바뀐다.
지온, 이상남, 김무형이 62학번, 내가 63학번, 이기윤회장이 64학번이니 사실 일반사회에서는 아래위 순위를 따질 상황은 아니지만 본인은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지 순위를 정리하며 즐거워한다.



무로도산장 부근에 가니 노년의 일본사람 한무리가 모여서 길옆에 있는 고산식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열심히 적고있다. 엄숙하고 진지한 태도에 좁은 길을 지나치기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앞서간 우리 일행은 무로도산장 옆 넓은터에서 등반에 앞선 몸풀기 체조를 하고 있어 부지런히 쫓아가 합류를 하였는데 뒤에 오던 이회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야생화 촬영에 심취하여 산행하는 것을 잊었는지 아니면 다른 길로 갔는지 은근히 걱정이 되어 목을 빼고 두리번 거리는데 마침내 저멀리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지온형은 담박에 인상을 쓰는데 당사자는 여전히 태평이다. 오늘날자로 사진작가 한사람이 탄생한 셈이다.



언덕위에 있는 이치노코시 산장을 향해 고도를 높혀가다보니 우측에 설계가 나타나고 아직도 녹다만 눈이 상당량 쌓여있어 이지역의 적설량을 짐작할 수가 있다.
흰구름이 떠있는 프른 하늘은 서정적인 분위기로 그림은 멋있지만 셋케이 계곡을 가로질러 오르는 한걸음 한걸음은 점점 다리의 무게를 더해 간다.


뜻밖에도 길가에 오야마, 이치노코시라는 한글 안내 안내판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기운이 솟는다.
마침내 2,700미터의 이치노코시 산장에 도착을 했다. 이치노코시가 있는 안부에서는 양쪽으로 전망이 터져 一望無際, 남쪽으로는 저멀리 북알프스의 연봉과 야리게다께의 침봉 모습까지 보인다.




우리가 올라온 곳으로는 무로도(室堂) 고원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좌측 산자락 끝의 무로도 역사와 평야지대를 넘어 2개의 크고작은 호수가 보이고 다시 고원 끝에 우리가 묵었던 라이쵸다이라(雷鳥莊)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있으며 그 뒤에는 쓰루기다께(劍岳)의 모습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