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9
무로도(室堂)는 나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2,450m나 되는 高原지대다. 호수가 2개나 있고 뜨거운 유황이 솟아오르는 계곡도 있는 상당히 넓은 지역으로 이곳에 처음 올라오면 고소를 느끼기도 한다. 따라서 평지보다 걸음걸이도 힘들고 짐도 훨씬 무겁게 마련이다.
무로도역에서 우리가 묵는 라이죠타이라(雷鳥莊)까지는 가이드 조군의 말에 의하면 20분이면 간다고 했는데 그건 고소에 적응이 되고 맨몸일 때의 경우이지 우리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얘기다. 다행이 비는 오지 않아 조금 낫기는 하지만 트렁크를 들고 가는 사람은 점점 죽을상이 된다.
트렁크를 가지고 오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는데 같이 가다보니 영 입장이 난처하다.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아는 척 할 수도 없고 처세가 영 난감한데 낑낑대는 옆의 전우를 어떻게 외면할 것인가? 특히나 여자멤버 3사람은 한결같이 무거운 트렁크를 가져 왔으니 더욱 어려운 입장이다.
우리 팀의 막내 김 사장은 선뜻 여자들의 트렁크를 2개나 받아들고 호기 있게 가더니 속력이 점점 줄어 마침내 맨 후미에서 허리도 못 편 채 숨을 헐떡거리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나 역시 처음에는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일행과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외면하였는데 상남 형이 영 마음에 걸린다. 자존심 강한 상남 형은 차마 짐을 같이 들고 가자는 말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는데 내가 들고 가겠다고 하니 괜찮다고 사양을 한다. 재차 손으로 가방을 뺏으니 그제야 슬그머니 손을 놓는다.
“아이고, 짐이 웬수다”
갑자기 저 아래 雷鳥莊이 두 배는 멀어 보이고 왼쪽 계곡아래 지옥곡에서는 유황냄새가 역겹게 올라와 힘든 나를 더욱 괴롭힌다.


산행 중, 특히 고산에서의 산행 시엔 짐 무게를 줄이는 것이 산행을 편하게 하는 관건이다. 나 역시 집에서 짐을 싸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였다. 심지어는 짐 무게를 줄이려고 전기면도기 까지 빼 놓고 왔는데 어쩌자고 엄청난 짐들을 가지고 왔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20분 예정이 40분이나 걸려 雷鳥莊에 도착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저러나 올 때는 내려오는 길이니 좀 나았지만 갈 때는 올라가는 길이니 어떻게 한다?
나중일을 지금부터 걱정하는 것은 피곤하기만하다. 일단은 머리에서 지우고 방 배정을 받은 뒤 온천욕부터 하기고 했다.

이곳 무로도의 온천물은 일반 온천지역과 다르다. 탕에 들어가 보면 물이 좋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가 있다. 온천께나 다녔다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코웃음 치다가 나중에는 한 번이라도 더 물에 들어가려고 난리를 피운다.
산장이지만 일본 사람 특유의 깔끔함과 정렬된 모습을 보고 처음 온 사람들은 자연히 우리나라의 산장과 비교를 하고 한탄을 한다.
“산장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지!”
부러운 것은 부러운 것이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조군이 버스 안에서 한말이 생각난다.
“이곳 알프스는 일본 땅에 있지만 자연은 영원히 일본사람만의 것은 아닙니다. 자연을 보호하고 깨끗하게 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옛날 일본 사람들이 우리에게 못된 짓을 했다고 해서 그 것을 갚는다고 일본산을 훼손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행위는 일본 사람보다 더 못한 사람이 하는 행위입니다”
맞는 말이다.

아침 TV프로에 배용준이 출연하여 인터뷰하는 모습을 방영하는데 담당 여자 아나운서가 배용준과 악수를 하면서 자기가 먼저 껌벅 간다.
길에서 만난 일본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하니 정확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하며 반색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곤니찌와” 했다가는 눈총 맞기 십상인데 우리가 일본을 경쟁상대로 생각한다면 우리를 잘 아는 상대편과 달리 우리만 아직도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으면 결국은 우리가 지는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무로도 산장에서의 첫 밤은 내일의 산행을 걱정하여 음주를 비교적 자제하는 모습인데 과연 이 절제심이 얼마나 갈 것인가 조금은 의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