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2
10월에는 알리와 리의 생일이 1주일 간격으로 있어 4천 원짜리 케이크와 콜라를 놓고 생일 파티를 두 번이나 했다. 21살 동갑내기인 두 친구는 같은 몽족으로 아주 친하다. 내가 둘이서 싸운 적이 없냐고 물어보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하는데 옆에서 보면 그 말이 사실인 것 같기도 하다.
한글 공부방은 작년 3월부터 시작을 했으니 이제 햇수로 2년째로 접어든다. 지난 9월,. 4학년 이 된 이 친구들은 이제 학교에서 가장 선배가 되었다.
두 사람 중 알리는 반에서 항상 1, 2등을 하고, 리는 중간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많이 나서 수업을 하는데 조금 애를 먹는다.
그동안. 이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라오스 국립대학의 학습 환경이 상당히 열악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학교 공부만 가지고는 졸업을 해도 실력이 미흡해서 한국말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한 학급 30 명중 5,6명도라고 한다.
사실 60년대 초의 우리나라 대학사정도 이와 비슷했다는 생각이 든다.
라오스의 21살은 여자들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나이다. 라오스는. 여자들은 몇 살에 결혼하냐고 물어보니 보통 18살이라고해서 깜짝 놀랐다.
여기 풍습은 결혼을 하면 대부분 남자가 여자 집에 들어가 사는데 생활의 주도권도 여자가 갖는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를 먹여 살리는 것이 당연한 일로 남자들은 대부분 여자들 하는 일을 거들어 주며 빈둥거리며 논다.
그리고 집안 대소사는 여자들이 알아서 하고 만약 부부가 이혼을 하면 아이들은 당연히 여자가 데리고 산다.
요즘 와서는 이 나라도 많이 변해 젊은 사람들끼리 따로 사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 그래도 기본적인 풍습이나 습관은 무시를 할 수가 없다.
두 친구와 교과서를 가지고 읽기와 듣기 공부를 하다 보니 우리와 다른 이 나라 사람들의 내면의 모습을 알게 되는데 우리나라와 생활 습관이나 풍습이 많이 달라서 오해의 소지가 생기지 않도록 상당히 조심을 한다.
알리는 기숙사 생활을 하고 리는 언니집에서 학교를 다닌다. 두 사람 모두 대부분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그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래도 결혼 적령기를 넘기면서 대학공부를 하는 이들은 이 나라에서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대학 다닌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들은 특수층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라오스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열망하는데 그것이 상당히 어려워 라오스국립대학에 들어오려면 보통 10대 1 이상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생각하는 것들도 일반 라오인들과 달리 자기들이 처한 어려운 형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들이 많아 나름대로 상당한 결심과 노력들을 하고 있다.
집이 20km정도 떨어져 있는 리는 금요일 저녁이면 집안 농사일을 거들기 위해 집에 가야 한다. 어머니의. 요구도 있지만 본인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나는 리와 개인 상담을 하면서 물어보았다..
“너는 내년에 대학 졸업한 뒤에 집에 가서 농사지을 거야?”
리는 내 얘기를 강하게 부인을 한다.
“그러면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내년에 학교 졸업한 뒤에 월급 많이 받는 직장에 취직을 해야지 공부 안 하고 집에 가서 밭 일만 하면 어떻게 해?”
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말을 못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내가 당황을 했다.
“너는 지금 학교 근처 언니 집에서 한방에 5명이 살아 공부할 장소도 없고, 또, 주말이면 집에 가서 농사일도 거들어야 하고 그러면 언제 공부를 하냐?
네가 엄마한테 기숙사에 들어가 공부만 하겠다고 상의 드려서 승낙받으면 선생님이 기숙사에 넣어 줄게”
그래서 큰맘 먹고 이번에 4학년치 올라갈 때 리를 기숙사에 넣어 줬다. 어렵게. 여건을 마련해 줬지만 결과는 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알리를 보면 나는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을. 가르치면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놀라울 정도로 흡수를 해 버린다. 웅변 연습을 위해 원고를 써주고 발음 교정을 해주면 혼자서 연구를 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도 있고 매사가 아주 적극적이다.
4학년에 올라오면서 알리에게 “이제“ 앞으로 1년밖에 안 남았으니 한국어만 아니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해라” 라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리와 같이 영어 교습을 받기로 했다는 얘기를 한다.
“그래? 잘됐네, 수업료는?"
“네,다른 사람보다 싸게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얼마 뒤에 영어 교습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왜. 그만 두었냐고 하니 예년에는 9월에 학년이 바뀐 뒤에 다음 해 3월까지 1년치 수업료를 내면 되었는데 금년부터 규정이 바뀌어 12월까지 완납을 해야 하고 만약 못 내면 매달 이자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학비를 벌기 위해 영어 공부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으니 할 말이 없어진다. “그렇구나” 하고 모른 척하자니 너무 마음이 답답해진다..
나는 지금 한글공부방을 후배들의 후원으로 유지를 하고 있다. 그러나 후원회의 상황도 그리 만만 치를 않다. 후원회 회원들은 한 달에 만원에서 5만 원 사이의 후원금을 보내주어 그 고마움은 표현할 길이 없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처음에는 10명이 넘던 숫자가 4~5명 정도로 줄어들어 조마조마해진다..
나야 한글 공부방을 직접 운영하고 있으니 관심이 온통 공부방에 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야 본인들의 일에 바쁘니 관심이 적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내가 처음에 무슨 생각으로 한글공부방을 시작한다고 했을까?
능력도 없으면서 당시의 분위기에 휩쓸려 시작은 해 놓고서 감당이 안되어 걱정을 하는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진다. 큰돈도. 아닌데 이렇게 헤매고 있으니…….
그래서 공부방을 접을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면 도저히 그럴 용기도 안 난다.
지난주 공부하러 왔을 때 알리가 얼마 전 학교에서 한글학과 전체 "한국어 읽기 대회”가” 열렸는데 여기에서 1등을 해서 상품을 탔다는 보고와 함께 사진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기뻐하는 마음과 더불어 한숨이 나올까?
노년에 라오스에서 봉사라고 하면서 어린 학생들 데리고 알량한 뒷바라를 하는 것이 버거워서 한숨을 쉬는 처지가 되었으니 내 신세가 조금은 처량하게 느껴진다.
어제저녁 공부를 끝내고 돌아가는 두 아가씨에게 기숙사에 가서 끓여먹으라고 라면을 한 개씩 주니 뛸듯이 좋아한다.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돌아서서 탄식을 하고 있다.
“그래 !, 하는 일이 조금 힘들다고 우울해 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지, 어려워도 우리 함께 버텨보자꾸나,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 ?.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저희들끼리 재잘대며 아파트 주차장 밖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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