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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산

빗속의 화채봉 (1)

by 남상태 2023. 6. 6.

2005.6

내가 설악을 처음 간 것은 1961년 여름이다.
그 당시 설악산은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는 시기 인지라 산에는 온통 전쟁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 탄피와, 녹슨 철모, 심지어는 해골이나 뼈까지 쉽게 볼 수가 있었고 군인들 초소가 곳곳에 있어서 등산객들을 검문 하는 등 살벌한 분위기에다가 안전시설이나 길 안내판 하나 없는 관계로 잘 못하면 길을 잃고 고생을 하기가 십상이었다.

이제는 많은 세월이 흘러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이 된 후 곳곳에 철사다리와 안내판을 친절하게 만들어 놓는 것은 물론 산장까지 지어 놓아 설악산을 처음 가는 사람들도 쉽게 산행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설악을 생각하면 항상 옛날 길을 몰라서 헤매던 시절의 설악을 떠올리게 된다. 마치 어른이 된 뒤, 먼 옛날 떠나온 어린 시절의 고향을 생각하듯.

속리산 산행 시에 국립공원관리공단 소장으로 근무하는 병화가 설악산 화채봉 산행 얘기를 한다. 6월 14일부터 16일 까지 설악산 출장을 가는데 화채봉 능선을 같이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권금성에서 화채봉 능선을 지나 대청봉까지의 코스는 입산금지 구역이다. 벌써 15년 이상 일반 등산객의 출입을 금하고 있는 코스인지라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이다.
이런 기회는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14일은 화요일이요 15일은 수요일이다. 즉 노는 날이 아니고 근무를 하는 평일 이라는 얘기다.
같이 동행할 사람은 결국 집에서 놀거나 여유 있는 사장님이나 갈 수 있다는 제한사항이 붙고나니 인원은 줄고 줄어서 결국은 팔자 좋은 원용덕, 지온, 남상태, 김진규 등 4명만이 출발을 했다.

아!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요 시집가는 날 등창 난다고, 하필이면 일기예보에 비 소식 있어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화채봉 능선에서의 경관은 설악의 어느 곳보다도 으뜸인데 빗속의 아름다운 경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설악의 콘도에서 저녁때 업무를 끝내고 도착한 병화와 도킹을 한 뒤 우리는 구수회의에 들어갔다. 그 결과 15일의 화채봉 산행은 아침에 비가 오면, 코스가 간단한 흘림 골을 먼저 하고 다음날 화채봉을 오르자는 기가 막힌 묘수를 짜냈다.
그런데 한사람이 만약 16일에도 비가 오면 어떻게 하느냐 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바람에 기가 막힌 묘수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서울 가는 날 늦게까지 비 맞으며 산행을 한 뒤에 다시 운전을 하고 서울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이 되는 일이다. 모든 것은 아침에 결정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이 아침에 비가 오지 않는다. 온이형 얘기로는 설악지역의 일기예보를 들었는데 비올 확률은 오전에 20~30 %이고 오후에 올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당연히 권금성으로 “고”다

케이블카는 아침 8시부터 운행인데 우리는 첫손님으로 탑승을 했다. 시간도 이르고 날씨도 안 좋아 손님은 우리 밖에 없다.
권금성 산장에서 찻집을 하는 유창서씨는 많이 늙으셨다. 옛날 울산암의 유인이 추락 사고 시에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벌써 먼 옛날의 일이 되었다.


찻집 뒤 바위에 오르니 유인이 생각이 새삼스럽다. 그 당시 그의 시신은 화장을 하여 이곳에 재를 뿌렸는데 그의 흔적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입산통제 초소에는 시간이 일러 근무자가 아직 출근을 하지 않았다.
컴컴한 숲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우리는 들어섰다.
때맞추어 비는 오기 시작한다.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좁은 숲길은 비에 젖어 걷기가 불편하다. 옷은 비에 젖고, 나무 잎에 맺힌 빗방울에 젖고, 땀에 젖어서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비안개로 인해 시계는 몇 미터가 안 되어 우려하던 사태가 나타나기 시작 한다.
그렇지만 고지가 바로 저기인데 예서 말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우리는 가야만 한다.
20분정도 오르니 바위 무더기가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권금성이라고 병화가 설명을 한다. 권금성은 고도가 850m이고 먼 옛날 권 씨와 김 씨 성을 가진 두 장사가 난을 당하자 가족들을 이곳으로 피신시킨 뒤 하룻밤 만에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성의 길이가 2km가 넘는다고 하는데 빗속에 시야가 짧아 확인할 길은 없다.

날씨가 점점 악화되자 용덕 형님과 온이 형은 주저하는 기색이 역역하다.
“구름 때문에 하나도 안 보이는데 꼭 가야만하냐?”
“당근이지요, 우중산행을 어디 한두 번 해 봅니까?”
“야! 나 허리도 아프고 컨디션이 안 좋아서…….”
“걸으면 낳아요!
가야한다고 우기기는 했지만 점점 험해지는 지형이 조금은 불안하긴 하다. 만약 빗길에 누구한사람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숲을 헤치며 어디가 어딘 인지도 모르는 가운데 걷다보니 제법 험한 암벽지대가 나타난다. 옛날 설치한 듯 한 쇠말뚝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의지할 구조물이 없어 완전히 자력으로 올라가야 한다. 난이도야 사실 별거 아니지만 암벽 훈련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겁먹게 생겼다.
용덕 형님은 아예 우회길을 찾아 밑으로 내려가고 몇 십 년 만에 설악을 찾은 온이 형은 협조의 눈길을 은근히 보낸다.
그런 와중에 바위틈에 피어있는 솜다리가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그것도 여러 개가 비를 맞은 채 피어 있다. 맘먹고 사진을 찍으려고 별렀는데 빗속에 사진이 제대로 나오려는지 걱정된다.

암벽지대를 지난 뒤 다시 시작되는 숲길은 도대체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이 안 된다. 시간은 어느새 출발한지 두 시간이 넘었다.
“병화야 우리 제대로 가는 거 맞아?”
“예, 맞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양쪽 경치가 끝내주는데 참으로 아깝습니다!
사람 약 올리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시간은 어느새 열두시가 지났다. 배가 고파서 중식을 먹기로 했는데 비를 피할 곳이 마땅치가 않다. 커다란 바위 밑에서 앉지도 못하고 우산을 받쳐 들고 그야말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무래도 처량하게 보인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화채봉 능선에서 비 맞으며 먹는 점심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앞으로 얼마나 산행을 할 수 있을는지?
세월은 흘러 어느새 인생의 종착역을 향하고 있는데 설악의 숲은 옛날과 달리 점점 울창해 지고 있다.

용덕 형님이 문득 물어본다.
“우리가 제법 걸었는데 화채봉이 아직 멀었나?”
“우리가 방금 지나온 곳이 화채봉입니다”
모두들 기가 막힌지 잠시 조용하다.
“야! 우리 화채봉 오나마나 아냐?”

빗속을 헤메다 보니 칠성봉도 지나고 화채봉도 경황중에 다 지나친 것이다.
그러나 누구를 탓하랴? 시계거리 20미터는 눈이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다.
빗물 말아 급하게 먹은 점심은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구별이 안 되는데 혹시나 하고 끓여온 보온병의 더운 물은 그 효과가 만점이다.
비를 맞으니 체온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윈드자켓을 꺼내 입고 다시 출발, 이제 잠시 내려가면 양폭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빗속이지만 그래도 사진은 찍어야한다. 꽃 사진을 몇 장 찍다보니 선두와 한참 떨어 졌다. 부지런히 쫓아가다보니 앞에간 사람들이 모두들 모여 있다. 의아해서 물어보니 길을 아무래도 잘 못 들은 것 같아 병화가 길 찾으러 갔다는 것이다.
양폭으로 가려면 중간에서 우측으로 빠져야 하는 것을 안개속에서 옆으로 빠지는 길을 못보고 직진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지금까지 대청을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백”
여기서의 “백”은 가방이라는 뜻이 아니고 다시 온 길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20분 내려온 길을 30분 다시 올라가야 하는 심정은 헉헉대는 숨결 속에 영 말씀이 아니다.
허리가 아파서 고생하는 온이 형의 표정은 잘 못 건들이면 폭발 할 것 같아 말도 못 붙이겠다.

다시 갈림길에 도착을 하니 왕복 한 시간 가까이 손해를 보았다. 그래도 그 바람에 화채봉 능선 길을 조금이라도 더 걸어 본 것은 행운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욕 먹을 것 같아 혼자서 해본 생각이다.

양폭으로의 하산 길은 뜻밖의 행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릿지 형태의 바윗길에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구름이 걷히며 만물상의 기가막힌 경관이 눈앞에 전개가 되기 시작한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넋이 빠졌다.
처음부터 보이는 것이 아니고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게 하는 깜짝이벤트는 우리를 너무나 감동시킨다.
 
“야, 사진 찍어”
당연한 얘기를 주문하고 있다.
잘 나오고 안 나오고는 나중 얘기다. 필름 걱정 안하는 “디카”이니 신나게 셔터를 누른다.
기암괴석이 구름 속에 보이다 말다 하는 것은 마치 무대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안개를 피우는 것 같이 보인다.
바위틈의 소나무는 운치를 더해 주는데, 몰려오는 구름은 순식간에 다시 시야를 가린다.
언젠가의 일이 생각난다.
산에서 어느 선배가 나한테 선물을 주겠다고 해서 무슨 선물인가 하고 물었다. 그런데 그양반은 엉뚱한 질문을 한다.
“이곳 경치가 어때?”
“엄청 좋지요”
“자네, 이곳을 갖고 싶어?”
“예?”
“지금부터 이곳에서 저쪽까지 자네 꺼야,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돼, 얼마나 좋은가? 돈 들여 살 필요도 없고 관리할 걱정 없고, 세금 낼일 없고, 원하면 언제든지 와서 내 산이 이려니 생각하면 되지 않아?”
“예 고맙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나는 경관이 좋은 곳은 내 산이려니 생각하고 있다. 오늘 내 산이 또 하나 생겼다.

양폭으로의 하산 길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급경사 지역은 마치 사태를 만난 듯 한데 돌이 구르고 불안정한 지형은 영 말씀이 아니다.
나만 조심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잘 못하면 다른 사람이 굴린 돌에 맞아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be careful”

조금 더 내려가니 급경사의 바위 지대에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바위도 미끄러운데다 비에 젖은 굵은 밧줄도 손으로 잡기가 버거워 줄을 잡고 내려가는 것도 그리 쉽지가 않다.
바위지역을 내려와서 먼저 내려 가려는 나를 온이 형이 애타게 부른다.
“야! 나를 두고 너만 먼저 가면 어떻게 해?

만만하게 보고 내려가던 진규가 발이 미끄러지면서 무릅을 겹질리고 말았다.
“환자 발생”
다행이도 불편하기는 하지만 걷는 데는 크게 불편이 없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2시,
8시 반에 권금성 산장을 출발하여 빗길을 6시간 가까이 걸었다. 마침내 양폭산장 위에 있는 천당 폭의 붉은 철 사리다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양폭 산장에 내려오니 비가 오는 가운데도 등산객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이제는 등산을 하는 것도 우천 불구인 것 같다.

앞으로의 하산 길은 그야말로 고속도로인데 그래도 아직 2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걸리면 어떠냐! 발길 닿는 대로 터덜터덜 걸으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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