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8
예봉산(683m)은 양수리 방향으로 가다보면 팔당대교 왼쪽에 강을 따라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산이다. 강 건너 검단산과 더불어 우리가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인데 등산로 입구가 다양해서 코스를 잘 선택하면 아주 조용하고 오붓한 산행을 즐길 수가 있다.
아침 9시, 부평역에서 전철을 타고 청량리역에 내려 예전처럼 망우리 방향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를 않아 다시 홍릉사거리 방향 현대코아 앞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기다렸는데도 역시 버스가 서지를 않는다. 이상해서 물어보니 양수리 방향 버스는 롯데백화점 앞 환승주차장에만 선다는 것이다. 지하철 입구에 바로 버스가 있는 것을 30분 이상 헤맸으니 은근히 화가 난다.
양수리 가는 2228번 버스에 오르니 요금은 현찰로 900원이다. 카드로 찍으면 800원인데 시외버스는 교통카드를 못 쓰는 줄 알고 현찰을 내는 바람에 100원 손해를 보았다. 아니 환승 혜택을 보면 400원만 더 추가하면 되는데 500원이나 손해를 본 셈이다. 오늘 조짐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11시 반, 하팔당 육교 앞 정류장에 내리니 평일이라 동네는 조용하기 짝이 없다. 동네 구멍가게에 들어가니 주인은 보이지도 않는다. 큰소리로 주인 찾아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입에 물고 산행 차비를 한다.

우선 카메라를 꺼내 목에 걸고 올라가야할 코스를 살펴보니 예전과 달리 숲이 많이 욱어져 입구가 잘 가늠이 안 된다. 원래 오늘 내가 오르고자 하는 코스는 등산객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 방향만 잡고 직등을 해야 하는데 칡넝쿨로 길이 덮여 길이 없어진 것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서 가는 수밖에. 희미한 길을 가늠하며 산위에 보이는 철탑을 기준으로 하고 숲으로 들어섰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이 말이 등산에도 해당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동네가 가까운 야산은 웬만하면 길이 있다. 몇 년 전 이 코스를 혼자서 오르다가 절벽을 만나 예정에 없던 암벽등반을 한 기억이 나는데 혼자서 산행을 할 때는 보조자일정도는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다.
송전탑을 기준하고 숲을 헤치며 오르다 보니 칡넝쿨 숲은 끝나고 관목 숲이 시작 되는데 경사가 급해서 그렇지 그럭저럭 오를 만하다.
20분정도 오르니 드디어 송전탑이 나타난다. 시야가 가려 방향 가늠이 잘 안되는데 우선 큰 줄거리에서는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예전의 그 송전탑이 아니다. 전에 있던 송전탑은 철거하고 조금아래 다시 더 큰 송전탑을 세운 것이다. 칡넝쿨이 욱어진 숲에서 꿩 한마리가 갑자기 날아오른다. 살이 통통한 것이 제법큰 놈이다. 설자리가 마땅치 않아 다시 위를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계절 탓인지, 지형 때문인지는 몰라도 눈에 띄는 꽃은 별로 없고 비온 뒤끝이라 간혹 버섯들만 보인다.
전에 겁먹고 오르던 10미터 암벽이 나타난다. 윗부분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는 암벽은 오르기가 주저되지만 한번 올라간 곳을 두 번째 올라가기는 상당히 수월하다.
암벽코스를 새로 개척할 때 루트화인딩에 신경을 쓰는 것은 과연 우리가 올라갈 수가 있는 곳인가 아니면 전혀 불가능한 코스인가를 가늠하기 위해서이다.
전망 좋은 바위에 혼자 올라 앉아 한강을 내려다보니 운무가 끼어 시야가 별로다. 지난번에는 한강 너머로 불암산 이며 수락산과 북한산, 도봉산이 너무나 멋지게 보였는데 오늘은 시야거리가 짧아 사진도 시원치 않겠다.

바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혼자서 먹는 점심은 또한 별미다. 날씨도 이제는 완전히 가을 기분이 들어 땀도 별로 나지 않고 바람도 선선하여 등산하기에는 안성맞춤인 날씨다.
나는 혼자서 하는 산행을 좋아 한다.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고, 노래를 부르던, 혼자서 주절대던 옆 사람 신경을 쓰지 않으니 얼마나 좋으냐?
인적이 전혀 없는 숲속의 적막은 나에게 행복감을 주는데 간혹 들리는 새 소리는 숲속의 고요함을 더욱 강조하는 듯하다.
등산객 한사람 보이지 않는 산길을 휘적휘적 걸으며 상수리나무 숲을 지나 철문봉(630m)에 오르니 등산안내도와 이정표가 요란한데 지나친 친절은 우리에게 부담을 준다.

철문봉 아래 헬기장에서 우측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전에 가보지 않은 길이라 호기심이 발동한다.
하산 길의 계곡은 수량이 많아 물소리가 시끄러울 정도인데 예봉산 정상 넘어 8당 2리의 하산 코스보다는 길이 험하지만 내려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계곡의 물이 너무 맑아 도저히 그냥 지나가지를 못하겠다.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맑은 물에 손을 씻고 발을 담그니 세상사 모든 근심이 없어진다.

일본산에서는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하지 말라면 안하는 일본사람들과 달리 하지 말라면 어떻게라도 하고 마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차이, 나 역시 별로 다를 바 없다.


11시 반에 올라가서 내려온 시간이 5시, 그사이에 만난 사람은 하산할 때 계곡 밑에서 차를 타고 놀러 올라온 연인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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