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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라오스

국경버스에서 일어난 일

by 남상태 2023. 5. 31.

2017-07-22 

한국사람이 라오스 방문 시엔 15일 노 비자다. 그래서 방문 후 그 이상 체류를 하려면 15일 지나기 전에 이웃 나라를 다녀와야 한다. 이른바 비자 크리어를 해야 한다.

나도 15일 기한이 이틀남아  메콩강 건너 가장 가까운 태국의 농카이를 갔다 오려고 아침 7시에 국경을 넘어가는 국제버스를 탔다. 농카이는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출발 시간이 되자 비엔티안 국제버스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정지해 있는 차들 사이를 지나 버스로 다가오더니 문을 열어 달라고 버스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그 사람을 보니 차림새와 모습이 조금 허름해 보인다. 그래도 명색이 국제 버스인데 동네 마을버스 타듯이 차도 가운데에서 문을 열어 달라는 그 사람의 태도가 황당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놀랍게도 버스 운전사는 문을 열어 준다.

국제 버스는 발권을  할 때 여권을 제시하고 기록을 전부 하는데 이 사람은 표를 끊은 뒤 어디를 갔다 왔는가 궁금한 생각이 든다. 차문이 열리자 그 사람은 냉큼 올라타고는 마침 사람이 없는 내 옆자리에 앉는다. 버스는  발권시에 좌석까지 지정을 해 주는데 이 사람이 주저 없이 자리에 앉는 것을 보니 원래 내 옆자리 손님이었나 보다.

 

그래서 그 사람과 시작된 인연, 아니 대화는 국경을 넘어가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사람은 라오말로 하고 나는 한국말로 하는데 서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서로 간에 의사가 전달되는 점이다.

 

나는 처음에  혼잣말로

“잘 못했으면 버스를 못 탈 뻔했네”

라고 하니 그 사람은 웃으며 라오말로 뭐라고 대꾸를 한다.

어, 이사람이 한국말을 알아듣나?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나갔다.

“좀 빨리 다니지 그랬어?”

그런데 그 친구는  또 무어라고 대꾸를 한다.

그런데 느낌이 이 사람이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것 갖지는 않고 그거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국경을 건너가는 메콩강다리를 지나는 중 계속된 비에 불어난 강물을 보고

“강물이 많이 불었네”

라고 하니 그는 또 무어라고 라오말로 답을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이  라오 사람인지 태국 사람인지 구별이 안 가서

“당신 타이사람이야?”

라고 한국말로 물어보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라오” 그런다.

아! 라오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한 나는 다시

“타이에 갔다가 오늘 다시 돌아 와요?”

라고 물어보니 뭐라고 대답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몰라 나도 무조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서로 대화는 하는데 상대방의 얘기를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해 조금 아리송해진다.

 

그렇게 대화 아닌 대화를 하면서 가다가 이것도 인연인데 라는 생각이 들어 핸드폰을 꺼내 셀카 모드로 바꾼 뒤

“우리 사진 찍을까?”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우리는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는데 조금 웃기기는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기 영어로

“유 재패니스?”라고 한다.

순간 “어? 이 사람이 영어도 하네”라는 생각을 하며 그때까지 이 사람이 조금은 어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선입견이 확 바뀌는데 영어 발음도 나보다 훨씬 세련된 인테리다.

 

나는 당황해서

“노, 아이 앰 코리안”

하니 그 사람은 결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캔 유 스피크 잉글리시?”

 

엄마야 이 일을 어쩐다냐?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리틀”

 

내가 선수 앞에서 여태까지 폼을 잡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계속  영어로 물어보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불안해진다, 

그 순간 공자님인가, 맹자님이 한신 말씀이 생각난다.

“외모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

그런데 이 말이 그분들이 하신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뒤부터 나는 잔뜩 쫄아서 이 사람이 영어로 무슨 말을 물어 볼가 봐 창밖만 열심히 바라보는데 다행히 별 질문은 안 한다.

우리는 한 세상 살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 사람의 팔자가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라고 했는데  나의 오만방자한 태도 때문에 이역만리에 와서 이런 난감한 경험을 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참으로 마음이 깊은 사람인가 보다. 나의 다소곳해진 모습을 보고는 측은지심이 발동했는지 더 이상 나에게 질문을 하지는 않는데 나는 문득 걱정이 생겼다.

 

이제 목적지도 다와 가는데 헤어질 때 그동안 대화를 나눈 정을 생각해서라도 그냥 헤어질 수는 없고 무언가 깊이 있는 인사말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한국말로 해야 하나 아니면 짧은 영어로 인사말을 해야 하나 라는 고민이  되는데 "굿바이"는 좀 그렇고 더 적당한 말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그러는 중  옆에 앉은 그 사람의 손을 보니 엄지손가락 부분에 실로 꿰맨 흔적이 보이고 이상하게 실밥이 겉으로 많이 나와 있다. 무언가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 손가락을 가리키며

“웟 해픈?”

하고 어설픈 질문을 하니 그 사람은 그래도 알아들었는지 다른 손도 가리키며 무언가 한참을 설명을 한다. 그 손도 정상이 아니다.

짐작하기에 아마도 사고가 나서 손을 많이 다친 것 같다. 

라오 사람들은  라오스의 병원시설과 의료 수준이 미약해 큰 병은 대부분 태국으로 건너가서 치료를 받는다.  그렇다면 이 친구는 사고가 난 뒤 치료를 받기 위해 태국을 다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아! 그래서 아까 출입국 관리소에서 출국수속을 위해 버스에서  내릴 때  앞에 내리던  그 사람이  자기가 차문을 열지 않고 나에게 먼저 내리라고  양보를 했구나”

 

그 순간 내 마음이 아파 온다. 역시 이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사람 행색이 조금 남루하다고  내가 사람을  무시를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졌다.

 

잠시 후 태국의 농카이 버스 스테이션에 도착 한 뒤 차에서 내리면서 내가 알고 있던  간단한 영어로 인사를 했다.

“Stay healthy and happy!”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그러면서 그 말이 맞는 말인가를 걱정하기보다는 내 진심이 제대로 전해 졌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