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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산

북일프스 2

by 남상태 2023. 5. 25.

2005.9

 

마침내 결전의 날은 밝았다. 만일 태풍이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면 산행은 아무래도 포기를 해야 한다.

밤새 빗소리를 들으며 걱정을 했는데 아침이 되니 빗줄기가 약해져서 산행에는 별 지장이 없을 듯하다.
바람만 강하지 않다면 산행중에 비 맞는 거야 그리 문제 될 것은 없다.
 
오늘 산행은 1,615m의 요꼬산장을 출발하여 가라사와(/2,350m) 산장을 경유 호다카다케(穗高岳/ 2,983m) 산장까지 올라가야 한다.
요꼬산장에서 강을 따라 직진을 하면 야리게다께로 오르는 길이고 산장에서 마주 보이는 요꼬대교를 건너 橫尾谷 숲속으로 진행하면 가라사와(涸澤)로 가는 길이다.


장비를 갖추고 출발을 할 즈음 회원 두 사람이 포기 의사를 밝힌다. 태풍 속에 산을 오르기가 부담스럽고 잘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누가 될 가봐 산행 하기가 주저된다는 얘기다.
두 사람은 가미고지로 내려가 우리가 짐을 맡긴 산장에서 내일 저녁 합류하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요꼬대교를 건너 구름이 잔뜩 낀 산을 향해 진군을 시작했다.
 


 

날씨가 좋을때는 왼쪽으로 병풍암 모습이 위압적으로 올려다 보이는데 오늘은 간간히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몇년전 6월에 이곳을 왔을 때는 계곡에 눈이 덮여 무릅까지 눈에 빠지면서 힘들게 오르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는 울창한 숲속 길을 걷는다.




우리가 산으로 올라갈수록 밑에 까지 내려왔던 구름이 이상하게도 같이 산으로 올라간다. 날씨가 좋아지는 증거라고 하며 모두들 밝은 얼굴이 되는데 비는 와도 부디 바람만 안 불었으면 좋겠다.
 
약간씩 내리는 빗속에 1시간가량 걸으니 橫尾谷을 건너는 혼다니바시(本谷橋/1,780m)가 나온다. 전에는 다리가 없어 눈 덮인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는데 이 다리도 새로 만들었다. 이곳의 고도는 우리나라 설악산의 높이보다 높다.


 
가라사와를 가려면 2,565m의 병풍암을 왼쪽에 두고 반원을 그리며 계곡을 올라가야 한다.
혼다니바시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오르막길은 시작되는데 고도가 높아지면서 침엽수림이 자작나무 숲으로 바뀌고 빨간 열매가 달린 마가목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한다.




경사가 급한 돌길을 걷다보니 높아지는 고도와 더불어 회원들은 점점 힘들어 한다.
나무들의 높이가 낮아지면서 마침내 가라사와 휴테와 산장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힘들어하던 여성회원들의 거친 숨소리에는 비명이 섞여 나오기 시작하고 남자회원 한사람은 다리가 완전히 풀려 산행을 포기하기 직전의 상황이 감지된다.
 
선두의 조군에게 휴식을 취하도록 한 뒤에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보행 방법에 대하여 조언을 해 주었다. 당사자들이 워낙 힘들고 괴로우니 혹시나 도움이 될까하고 열심히 듣는다.
조군에게는 장소에 관계없이 20분이 되면 쉬도록 하고 경사가 더 급해지면 걷는 시간을 15분으로 조정하도록 하였다. 쉬기 좋은 장소를 찾는다고 5분, 10분을 더 가다보면 뒤에서 힘들게 가는 사람은 회복이 불가능한 크로키 상태가 된다.
휴식의 요령은 힘이 있을 때 쉬어야 회복이 빠르지 완전히 지친 다음에는 오래 쉬어도 회복이 잘 안 된다.
다행히도 회원들의 컨디션이 회복되어 진행 속도가 정상이 된다.


 
가라사와 지역은 넓은 협곡의 카르 지형으로 3천 미터의 주능선까지 급경사를 이루며 8월까지도 눈이 덮여 있어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이제 10월 초면 다시 눈이 내리고 10월 말이면 산장은 폐쇄가 되는데 지금 9월초는 눈이 제일 적을 때라 계곡에는 잔설의 모습만 보인다.
 
오꾸호다까다께 연봉의 모습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고 왼쪽에 가라사와 휴테를 보면서 가라사와 산장을 향하여 오르다 잠시 쉬는 순간 우리의 이회장이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내 안경!”
아까 개울가에서 쉴 때 계곡물에 얼굴을 씻는다고 안경을 벗었다가 그만 놓고 온 모양이다.
지온 형은 기가 막힌 듯 말을 안 한다.
“아이고 저걸”
 
그렇지만 본인은 난감한 표정이다. 30만 원짜리 안경은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험한 길 걷다가 잘 안보여 자빠지는 것이 더큰 문제다.
짐을 놓고 찾으러 간다고 혼자서 내려간다. 바로 위에 우리가 점심을 먹을 가라사와 산장이 있으니 시간적인 여유는 있지만 내려가는 뒷모습이 영 미덥지 못하다.
 
나머지 회원들은 가라사와(涸澤/2,350m)산장을 향하여 마지막 힘을 쏟는다. 산장에 도착을 하니 시간은 12시, 예상보다 빨리 올라온 셈이다.


산장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회장이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지형이 익숙지 않아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되어 그냥 올라왔다는 힘없는 대답이 너무나 애처로운데 가라사와 산장에서 2시까지 점심시간을 갖는다는 얘기를 듣고는 조군과 다시 내려간다.
결과는 성공, 안경 찾은 것을 모두 축하를 해 주는데 본인은 엄청난 보람감을 느끼는 듯하다.
 
지온 형이 마침내 한마디 한다.
“야! 메가네야, 참으로 쪽 팔린다. 너는 이제부터 메가네 상으로 이름을 바꿔라”
이회장의 대답이 걸작이다
“와다구시노 메가네상이 아니고 메가네사마다”
그래서 다음부터 다른 사람이 메가네상이고 부르면 그때마다 본인은 메가네사마로 정정을 한다.


 
가라사와 산장 전망대에서 보이는 주위 경관은 구름에 가려 산 윗부분이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 잔설이 남은 설계의 모습과 우리를 압도하는 거대한 계곡의 모습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2시, 구름 속에 가린 호다카다케(穗高岳/2,983m)산장을 향하여 출발을 하였다.
2시간 정도 올라가야하는 가파른 오르막길은 불안정한 바위 지대로 손과 발을 전부 사용해야 하는 험로인데 위험지역은 철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지만 설치한지 오래된 듯 녹슬고 불안한 모습이다.








이런 지형은 사실 난이도는 별 거 아닌데 암벽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나 여자들은 공포감으로 맥을 못 춘다. 편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도 몸을 잔뜩 옴추린채 바위에 매달리니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이 된다.

 



시야가 가린 구름 속을 위만 보고 힘들게 올라가기 2시간, 마침내 호다카다케 산장을 오르는 돌계단이 나타난다. 이 호다카다케 산장은 능선 위 좁은 안부에 어렵게 자리를 잡았는데 맑은 날 위에서 내려다보면 참으로 산장이 들어설 자리가 아닌데 용케도 산장을 지었다는 감탄을 하게 된다.
이 산장은 북알프스를 선전하는 팜프렛에 빠지지 않고 등장을 하는 명물 산장중의 하나다.








비오는 날 이런 곳에 올라온 뒤 산장이 없으면 얼마나 한심할까?
3천 미터 고도에 있는 산장은 비에 젖은 우리가 묵기에 너무나 편안하고 안락한 곳이다.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난롯가에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며 마시는 맥주 한잔은 우리를 신선의 세계로 안내는데 창밖의 빗소리와 바람 소리는 잠시 동안 우리와 상관없는 세상의 일이 되었다.
 
자! 이제는 잠자는데 고소의 고통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휴게실의 TV에서는 태풍의 피해 상황을 겁나게 보도하고 있는데 내일은 아무래도 정상에 가기는 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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