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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산

지리산 뱀사골 단풍구경 (2005년)

by 남상태 2023. 9. 23.

      2005.10.25  (이글루스)

가을철에 억새와 단풍 구경을 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생각하고, 주저하다 보면 제철에 단풍을 구경하기는 힘들다.

지리산의 뱀사골도 한 단풍 하는 곳인데 문제는 교통편이다. 몰리는 단풍인파로 근처에 가서는 두세 시간 기다리는 것은 보통이고 귀경길도 보통 고역이 아니다.

 

안내산행 산악회를 알아보니 성삼재- 노고단- 반야봉- 묘향대- 이끼폭포 - 뱀사골 - 반선코스를 가는 산악회가 있다.

이끼폭포는 전에 가보지 못한 곳이고 또 단풍이 죽여주는 뱀사골로 내려온다니 아주 “딱”이다.

우리 일행 4 사람(남상태, 김진규, 표종환, 김명기)은 일단은 신청을 하였다. 그날의 단풍구경을 잘하고 못하고는 운에 맡기기로 하였다. 

 

10월 23일(일), 아침 7시 20분, 양재동을 출발한 버스는 별 막힘이 없이 신나게 달려 10시 30분에 지리산 매표소에 도착을 하였는데  생각보다 빨리 온 셈이다. 그런데 매표소에서 알아보니 차가 밀려서 성삼재 까지 올라가려면 1시간 반에서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산악회 대장이 결단을 내린다. 그 정도 시간을 기다려서는 전 코스를 돌기가 어려우니 차가 밀리지 않는 역코스인 반선을 들머리로 하여 뱀사골, 이끼폭포, 묘향대, 반야봉으로 오른다는 얘기다.

설명은 이해가 되는데 성삼재에서 노고단 반야봉은 경사가 완만하여 걸을 만하지만 뱀사골로 해서 반야봉을 오른다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을 것 같다.

 

중뿔나게 내가 나서서 아는 체할 수도 없어 하산 시에 버스가 대기하는 곳을 물어보니 우리가 출발하는 반선에서 차가 기다리는데  6시까지는 돌아오라고 한다.

반선 출발시간 10시 45분, 우리 일행은 전 코스를 가지 않고 이끼폭포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오기로  하고 산행팀 후미에서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뒤쫓아 갔다.


경사가 완만한 뱀사골 계곡 길을 선두는 산악 마라톤을 하듯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바람에 뒤꽁무니도 보이지 않는다. 안내산행 산악회의 단골회원들은 힘이 좋아 참 빨리도 걷는다.

 

계곡으로 들어갈수록 단풍의 색상은 점점 다양하고 짙어지는데 계곡의 물 또한 맑기가 거울 같아 명경지수(明鏡止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군데군데 소를 이룬 곳은 요룡소, 뱀소, 병소등 어울리는 이름들을 하나씩 다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그 이름과 설명이 맞는가를 따지는 일은 일단은 접어두기로 하고 사진이나 열심히 찍고 있는데 사진기 가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폼 잡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우리 팀 45명은 선두와 후미가 너무 벌어져 같이 산행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고 목적하는 바도 달라서 통제가 안 된다. 우리 일행 네 사람도 사진 찍느라고 뿔뿔이 흩어져 진규와, 종환이는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고 산행에 자신이 없는 명기만 내 옆에 바짝 붙어 있다.

 

 

 

 

뱀사골 산장을 향해 올라가기 2시간, 중간에 기다리고 있던 산악회대장이 배낭에 부착한 산악회 리본을 보고 우리에게 올라가지 말고 기다렸다가 후미와 같이 가자고 한다.

후미 팀은 모두 10명 정도, 이끼폭포와 묘향대를 가려면 큰길에서 벗어나 우측의 인적 없는 계곡으로 올라가야 한다.

길을 아는 사람이 알려주지 않으면 그대로 지나칠 곳인데 계곡 길은 입구부터 제대로 된 길이 없고 계곡물과 바윗길이 엇갈려 걷기가 만만치 않다.

 

 

길까지 희미하여 길을 찾기가 어려운데 얼떨결에 앞장섰던 명기는 10미터를 못 가서 엉뚱한 곳으로 올라간다.

정상적인 길이 없는 계곡은 옛날 60년대의 지리산을 연상케 한다.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우리나라의 이름께나 있는 산은 이제는 등산로를 너무 잘 정비해 놓아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고 공원을 오르는 것 같아 옛날이 그리운데 오래간 만에 지리산에서 자연 그대로의 계곡을 오르게 되니 정말 기분이 “짱”이다.

 

사진을 찍으며 올라가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1시가 훨씬 지났는데 아직 점심도 못 먹었다. 길을 찾으며 오르기 1시간 정도, 마침내 이끼폭포에 도착을 했다.

우측 절벽에 여러 줄기의 실 폭포가 흐르고 있고 절벽은 이끼로 덮여 있다. 보기 드문 광경에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증명사진들을 찍느라고 부산하다.

 

잠시 후, 다시 묘향대를 향해 출발을 한다. 명기는 더 이상 올라가기가 주저되는 듯 망설이는데 산행대장에게 묘향대 까지 걸리는 시간을 물어보니 30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현재 시간은 2시, 사진을 몇 장 더 찍다가 보니 일행은 다 올라갔고 명기도 보이지 않는다.

안 간다고 했는데 웬일로 먼저 올라갔나 해서 부지런히 뒤쫓아 가서 앞에 가는 일행들을 살펴보니 명기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지? 앞에 먼저 올라갔나?”

 

험한 길에서 앞사람을 추월해 가기도 어렵다.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아무래도 미심쩍다.

김밥도 내가 가지고 있는데 어쩐다? 시간도 2시 반, 계속 갈 수도 없고  허기가 져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김밥을 꺼내고 있는데 밑에서 명기가 불쑥 올라온다.

 

명기는 이끼폭포에서 내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를 불렀지만 뒤도 안 보고 올라가기에 할 수 없이 뒤쫓아 올라왔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무엇에 홀린 것 같다.

우리 둘은 점심을 먹은 뒤 하산을 하였다. 진규와 종환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인적 없는 하산 길은 올라올 때보다 길 찾기가 더 아리송하다. 앞장선 명기가 계속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있어 내가 다시 앞장을 섰다.

 

급한 경사길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어렵다. 나중에 우리 일행들이 내려올 때 고생 좀 하겠다는 얘기를 하며 큰길에 도착한 시간이 정각 4시,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반선까지 내려가는 길도 그리 짧지 않은 길인데 위로 올라간 우리 팀이 자꾸 걱정이 된다. 산행 시간을 계산해 보면 계속 올라가야 할지 하산을 해야 할지를 빨리 판단해야 하는데 참 답답한 사람들이다.

산속의 어둠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기온이 내려가서 옷을 꺼내 입었다.

 

넓고 평탄한 길이지만 끝없이 계속되는 하산길은 걷는 사람을 은근히 지치게 한다. 하산길 옆의 구조신고 말뚝의 번호가 11번인 것을 보니 아직도 5.5km가 남았다. 국립공원에 설치해 놓은 구조신고 말뚝 사이의 거리는 대강 500m다. 그래서 그 번호를 눈여겨보면 하산까지의 거리를 환산할 수가 있다.


반선까지 남은 거리 2km 지점부터 계곡 옆으로 탐방 데크길을 만들어 놓았다.  계곡을 따라 걸으며 계곡을 볼 수 있게 해 놓았는데 운치도 있고 위의 길로 가면 볼 수 없는 비경도 감상할 수가 있어 훌륭한 아이디어라는 칭찬이 절로 나온다.

 

반선 버스대기 장소에 도착을 하니 시간은 5시 40분, 우리가 이제야 도착을 했으니 위에 올라간 팀은 언제나 내려올 것인지 마음이 불안해진다.  진규와 종환이도 내려오지 않아 전화를 계속 걸었지만 받지를 않는다.

 

반선 출발 예정 시간인 6시가 지났지만 내려온 사람은 10명도 안 된다. 6시가 다되어 진규한테서 전화가 온다. 지금 다 내려왔는데 올라갈 때 이끼폭포 가는 길을 못 찾아 뱀사골 산장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이라고 한다. 두 사진사는 사진찍는데 정신이 팔려 꽃사진을 찍으러 가면 항상 일행들을 기다리게 만든다.

두 사람은 위에서 헤어졌다가 다 내려와서 만났다고 하니 어두운 산에서 조난을 안 당한 것이 다행인데 아름다운 단풍이 죄라고 할 수밖에 없다.

 

6시가 넘고 7시가 지나도 위에 올라간 일행은 어둠이 깔린 어두운 밤에도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역시 예상대로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자 산행하기 어려운 코스를 무리하게 운행하는 산악회의 행위를 먼저 내려온 사람들이 항의를 한다. 누구는 시간에 맞추기 위하여 올라가다 말고 내려왔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고 큰소리로 성토를 한다.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마지막 일행이 깜감한 밤길을 성삼재에서 봉고를 타고 내려온다. 이끼폭포에서 우리와 같이 올라갔던 팀인데 올라간 길로 내려오지 않고 노고단으로 올라가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차를 타지 않았으면 밤 10시가 되어도 오기 힘들었고 사고위험도 많았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명기와 같이 중간에서 하산한 것이 판단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등반대장은 손님들에게 무리한 운행을 한데 대한 사과를 하고 8시가 넘어서 버스는 반선을 출발했다.

단풍구경은 잘했지만 12시가 넘어 양재동에 도착을 한 관계로 집이 먼 나는 반포의 명기집에 가서 예정에 없던 외박을 했다.

 

20241116일 지리산 뱀사골 단풍구경

https://youtu.be/p1gUkcgUB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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