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프라우는 그 높이가 4,158m로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4,807m)보다는 낮지만 융프라우가 알프스의 대명사처럼 오르내리게 된 것은 1912년 융프라우와 뮌히 안부에 전망대가 만들어지고 등산열차가 생긴뒤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해발 3,454m의 융프라우요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열차역이다. 클라이네샤이텍에서 융프라우요흐까지 암반을 뚫어 만든 7.2km 길이의 터널은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 인가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융프라우요흐로 오르는 기차는 인터라켄 동역에서 출발을 한다. 여름에는 30분 간격, 그 외는 1시간 간격으로 출발을 한다. 프랫트홈에서는 열차가 A, B 로 나뉘어 있다. A는 우측의 라우터부르넨으로 오르고 B는 왼쪽 코스인 그린덴발트 역으로 가는 열차다. 출발은 같으나 처음 기차역 쯔바이뤼쉬넨 역에서 갈라진다. 이 두노선은 클라이네샤이텍에가서 다시 만나는데 여기서 다시 융프라우요흐 역으로 가는 산악열차를 갈아 탄다. 어느쪽으로 오르던 내려올 때는 올라갈 때와 다른 코스로 내려오면 색다른 경관을 감상할 수가 있다.
올라갈 때
1) 인터라켄오스트 - >그린덴발트 / 34분 (BOB기차)
2) 그린데발트 -> 클라이테샤이텍 / 34분 (WAB기차)
3) 클라이네샤이텍 -> 아이거글렛처 -> 아이거반트 -> 아이스메어 -> 융프라우요흐 / 51분 (JB기차)
▼ 아침에 융프라우요흐에 가기 위해 인터라켄오스트에서 발권중, 그린덴발트까지는 스위스패스로 갈수 있지만 그 위 산악열차 코스는 스위스패스를 제시하면 122프랑(15만원정도)으로 할인을 해 준다. 할인이 없는 금액은 204프랑이니 상당히 비싼금액이다.
집사람은 가격이 너무 비싸니 올라가지 말고 다른 곳 구경을 하자고 한다.
▼ 정상에서 먹을 수 있는 컵 라면 티켓, 돈을 주고 사먹으려면 한국돈으로 8천원인가 한다고 하니 꼭 챙겨야 한다.
▼ 인터라켄에서 그린덴발트 까지 가는 열차
▼ 창 밖의 풍경이 참으로 牧歌的이다.
▼ 1,034m의 그린덴발트에 도착을 했다. 이곳에서 산악열차를 갈아타고 올라가는데 클라이네샤이택(2,061m)에서 또한 번 갈아 타야 한다. 산악열차는 일반 열차와 달리 급경사를 올라가기 때문에 차 바닥에 기차를 끌고 올라갈 수 있는 톱니바퀴 선로가 있다.
▼ 그린덴발트 풍경, 우측에 아이거의 거벽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인다.
▼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는 창밖의 풍경
▼ 차를 갈아탈 때마다 기차의 색상이 다르다
▼ 이 기차의 종착역인 융프라우요흐는 묀히(4,107m)와 융푸라우(4,1058m) 사이의 鞍部를 말하는데 그 높이가 3,454m로 이곳에 올라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소증세를 호소한다. 그래서 오래 머물지 않고 하산하는 사람도 많다.
▼ 이 기차는 좌측의 아이거 부터 우측의 묀히까지 굴을 뚫고 그 속을 지나간뒤 융프라우요흐에 도착을 한다. 요흐라는 말은 안부라는 뜻이라고 한다.
▼ 굴속을 가던 기차는 굴속의 중간역인 아이거반트에 잠시 쉬어간다.
▼ 아이거반트역에서 하차
▼ 전망대까지 연결된 굴속을 걸어간다. 이런 시설들을 지금부터 백년전에 모두 인력을 동원해 공사를 했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 이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풍경은?
▼ 이런 풍경이 전개 된다.
▼ 창밖으로 보이는 이 암벽 부분은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슬픈 사연이 있다.
1936년7.18일 여름, 독일의 등반가인 안데를 힌터슈토이서와 토니 크루츠, 오스트리아 등반가인 빌리 앙거리와 에디라이너등 네사람이 이 북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두팀은 처음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빠르게 오르기 시작하다가 제2 빙원에서 비박을 하게 되는데 불행이도 오스트리아 팀중 앙거리가 부상을 당하고 만다.
다음날은 설상가상으로 짙은안개로 등반을 못한채 두번째 비박, 셋째날에 네사람은 천신만고 끝에 죽음의 비박지점에 도착, 이곳은 1년전 뮌헨에서 온 4명의 등반가가 얼어죽은 곳이다. 앙거리의 부상이 심각하여 그들은 후퇴하기로 결정한다. 날씨는 점점 나빠져 제1빙원에서 세번째 비박, 7월 21일 올라갈 때 트래버스 한 지점까지 하강을 했으나 정상적인 하강이 불가능해 수직현수하강을 시도한다,
이때 철도역무원이 아이거반트역의 창문에서 불과 150m지점까지 내려온 네사람을 발견했으나 세사람은 끝내 그곳에서 떨어져 죽는다. 오직 토니크루츠만이 줄에 매달려 살아 있는데 산악구조대들이 와서 구조하려 했지만 벽이 꽁꽁얼어 있고 눈사태가 일어나 구조가 불가능 하다,
7월 22일 쿠르츠는 꽁꽁언 손으로 엉킨 자일을 풀어 아래로 내려주자 구조대는 새 자일을 그 자일에 묶어서 끌어 올리게 한다. 쿠르츠가 그 자일을 이용해 하강중 구조대와 5m 거리에 이르렀을 때 자일 매듭이 카라비나에 끼어 더이상 하강이 되지 않았다. 절망의 상황, 마침내 쿠르츠는 구조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서서히 숨을 거두었다. 그 장소가 사진에 보는 바로 이곳이다.
▼ 융프라우요흐 역에 도착을 했다.
▼ 철도건설 당시의 유물들
▼ 융프라우요흐 역의 개통
1896.07.27 건설착수
건설인력 약 100명의 이탈리아 노동자 투입
1898.09.19 클라이네사이텍 - 아이거글렛쳐 구간 개통
1898 터널의 암벽 폭파작업
1903.06.28 아이거반트역 개통
1905.12.01 재정난으로 2년간 공사 중단
1912.02.21 종착역 융프라우요흐까지 관통
1912.08.01 착공 16년만에 해발 3454m 지점 개통
총공사비 원래 예산의 두배인 1600만 프랑이 투입되었다.
▼ 알프스의 3대 북벽은 마터호른(4,477m), 그랜드조라스(4,306m), 아이거(3,970m)다. 이 북벽들중 아이거북벽은 마의 북벽이라고 불리웠는데 그 이유는 가장 험난한 조건을 골고루 갖춘 1,800m 수직의 거대한 암벽 때문이다. 어둠침침한 잿빛의 암벽과 만년설, 유리 같은 얼음, 그리고 암벽은 언제나 가스에 가려져 있고 낙석, 눈과 얼음 사태 등이 수시로 발생을 하여 난공불락의 요새를 방불케 하는데 이런 조건은 오히려 알피니스트들에게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동안 수백 명의 클라이머들이 등정에 성공을 하였지만 그 성공의 이면에는 수십 명의 많은 희생자들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아이거 북벽은 일명 하얀거미라고 불리운다. 아이거 벽면에 보이는 하얀 설원이 하얀거미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아이거북벽에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의 아이거 북벽은 수많은 산악인들이 도전을 했는데 1938년 7월24일 하러 외 3인이 초등정에 성공을 하였고 그 이후 동계 초등, 단독등반, 여성초등 등 다양한 형태의 등반이 시도 되어 성공을 거두어 세인의 관심을 끌었으며 지금도 많은 산악인들이 도전을 하고있다.
▼ 빙하가 끝없이 펼쳐저 있다.
▼ 우리는 이 길을 편안하게 걷고있지만 이 굴을 만드느라고 고생한 당시의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당시 갱부의 임금은 하루에 4.6프랑이었다고 한다.
▼ 야외 전망대
▼ 아이거의 암벽이 눈앞에 보인다. 수많은 등반가들이 저곳에서 유명을 달리 했다.
▼ 이곳에 국적 불문하고 인기인 한국 컵라면, 우리는 공짜 쿠폰을 십분 활용했다.
▼ 톱니바퀴 레일
▼ 우리식구는 모두 고산증세를 호소한다. 나도 머리가 띵하다. 하산기차를 기다린다.
▼ 크라이네샤이텍 역
▼ 내려올 때는 라우터부르넨코스다. 올라갈 때와 경관이 다르다. 내려올 때는 중간역에서 내려서 걸어 내려 오거나 내린 마을에서 구경을 한뒤 다음기차를 타고 와도 된다
▼ 마을 풍경이 좋다는 벵엔에 내려 마을 구경을 했다.
▼ 벵엔은 참으로 한적한 곳이다. 이곳에서 하루 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기차타고 내려오면서 본 풍경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