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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일기

경비원 교육을 받으며 (10-3)

by 남상태 2023. 6. 8.

경비원 생활을 시작한지도 벌써 2주가 지났다. 24시간 맞교대를 하다 보니 날자가 엄청 빨리 지나간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니 긴장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빨리 이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이 급선무다.

사람들은 지난날의 화려한 추억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그리고 은연중에 그런 사실을 주위에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행위가 그 사람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주범이 된다.  가능하면 자세를 낮추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것이 로마에서 잘 살아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어느 날 아침 관리 사무실에서 경비원들 모두 모이라는 연락이 온다. 모이라면 얼른 가는 것이 상책, 관리사무소 근처에 도착을 했는데 길가에 주차해 있는 차 옆에서 어떤 사람이 씩씩거리고 서 있다가 나를 보더니 성질을 내며 항의를 한다.
“이 차에 누가 주차 위반 딱지를 붙여 놨습니까?”
차가 서있는 위치는 분명히 코너 부근이라 주차를 해놓으면 안 되는 지점이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오히려 성질을 내고 있다.
이럴 때
“주차 금지 구역이니 딱지를 붙여 놓는 게 당연하지요. 이곳에 주차 시키면 안 됩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다가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내가 다 뒤집어쓰게 마련이다.

“관리 사무소에서 붙여 놓은 모양이군요”
"관리사무소 어떤 놈이야!  가서 당장 모가지를 비틀어 놓아야지“

아파트 단지 내는 주차 때문에 항상 시비가 발생을 한다.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 보면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귀찮다는 핑계로 아무 곳에나 얌체같이 주차를 해 놓는 사람들이 있어 정상적인 주차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리 사무소에 주차 단속을 안 한다고 항의를 한다.
질서유지는 다 같이 협조를 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지 나는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고 다른 사람들만 지키라고 한다면 질서 유지를 하기가 어렵다.

 

이 사람은 보아하니 차도 고급차이고 제법 거들먹거리는 사람 같은데 하는 말과 싸가지가 바닥 인생 수준이다. 순간 성질이 나는 것을 간신히 참고
“사무실에 올라가서 말씀해 보세요”
한마디 던지고 자리를 떴다.

사람이 양심이 없어도 유분수지 자기가 잘못해 놓고 어떻게 저리 당당할 수가 있을까?

아파트 경비원 근무 수칙 제 1호는 주민과 마찰을 하지 않는 것이다. 주민이 설사 부당한 요구나 항의를 하더라도 경비원은 같이 맞응을 해서는 안 된다. 경비원 생활을 계속하려면 이 수칙은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파트가 엄청나게 많다. 이 많은 아파트에 대부분 경비원들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숫자 또한 엄청나다. 그동안 내가 알지 못하던 분야에서 밤을 새우며 근무를 하는 수많은 경비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얼핏 믿어지지가 않는데 비단 경비원들뿐만 아니고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그늘의 세계에서 기본적인 권리주장도 제대로 못하면서 근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기가 쉽다. 더구나 그들은 그들의 어려움과 억울함을 표출하지 못하는 속성이 있지 않은가?

오후에 내가 소속된 용역관리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경비협회에서 신입 직원들에게 실시하는 교육을 받으라는 것이다. 28시간 교육인데 입사 후 한 달 이내에 교육을 받지 않으면 근무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은 비번 날 가서 받아야한다고 해서 순간 열이 뻗혔다.
아니, 날 밤을 새운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꼬박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이란 말인가? 그것도 4일간 받으려면 8일간 잠을 자지 못한다는 얘기인데 그런 비인간 적인 교육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물었다.
“비번 날 교육을 받으면 수당은 나옵니까?”
이 상황에 기껏 한다는 소리가 수당 얘기다.
“그런 거 없습니다”
근무를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은 탓에 밤을 새우는 일이 아직 익숙지 않아 다른 사람들 보다 더 피곤함을 느끼고 있는데 일주일씩이나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여직원에게 몇 마디 화를 내다가 역시 나는 아직 멀었구나 라는 생각에 얼른 전화를 끊었다.

이런 세계는 주객이 동등한 관계가 아니다. 싫으면 그만두면 된다. 그리고 주인의 입장에서는 절대 사정해서 객을 잡지 않는다. 모든 조건을 감수하고라도 일을 하고자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이가 많다고 안 된다는 것을 내가 사정해서 취직을 한 입장이 아닌가?
모든 일은 “자업자득” 이라고 했다. 나는 내 입장에서 얘기하고  주위에서도 역시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생각은 자칫 불만이 축적되어 디스토피아 적인 성향이 되기 쉽다. 사회의 불만 세력은 이렇게 해서 싹트기 시작하는가 보다.

시키는 사람은 부림을 받는 사람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침 든든하게 먹고 나온 사람이 사흘 굶은 사람한테 배고프지만 점심때 까지 조금만 참으라고 한다면 사흘 굶은 사람은 얼마나 환장할 일인가?

나는 28시간 교육을 아주 열심히 받았다. 60명이나 되는 대부분의 수강자들은 약 먹은 병아리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강사들도 밤새우고 근무한 뒤에 나와서 교육 받는 대부분 연로한 수강자들이 측은한지 묵인하는 분위기다. 나는 교육기간 동안 한 번도 졸지 않고 오기로 버텼다. 학교 다닐 때 이렇게 열심히 수업을 들었으면 나의 오늘날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약먹은 병아리들 처럼 졸고 있는 수강자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는 강사들 역시 참으로 맥 풀리는 일인데 그런 상황에 익숙한지 그들은 그리 상관을 하지 않는다.
“잠은 자지 말고 졸기만 하세요”
어느 강사의 멘트에 웃음과 페이소스가 묻어있다.

강사들 스스로도 이런 상황에 의문을 제기한다. 근무자에게만 교육을 해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걱정하며 취업 전에 라도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위해 국회에 법개정을 제출해 놓았지만 불철주야 국정문제에 바쁘신 국회위원님들이 이런 문제에 과연 언제나 신경을 써 주실지 부지하세월이라는 의견이다.

새벽 5시 반에 교대를 한 뒤에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간단한 아침을 먹으면 7시가 된다. 8시 까지 쪽잠을 자고 다시 교육장으로 출발, 강의실 의자에 앉으면 정신이 멍하다. 이런 교육은 나만 받는 것이 아니다. 새로 경비에 취직이 된 사람들은 모두 받는다. 강의가 끝나면 매과목 시험을 본다.

시험에서 탈락을 하면 재 수강을 해야 한다는 위협으로 수강자들의 이완심리를 간신히 막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좌우에 있는 사람들은 내 답안지를 컨닝하는 것으로 탈락을 모면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정작 마지막 날 시험성적으로 탈락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수업을 진행하기 위한 교묘한 심리작전이다.
8일간의 수강 기간은 참으로 길기도 한데 마지막 날은 정말 피곤해서 참기가 힘이 든다.

신입경비원 교육 프로그램은 소속된 용역관리회사에서 10만원인가를 부담하고 수료자에 한해서 나라에서 환급을 해 준다고 하는데 중도 탈락자의 경우엔 그 비용을 본인이 부담을 해야 하니 그만두더라도 교육을 다 받고 그만두라는 담당자의 간곡한 충고 아닌 엄포가 교육자들에게는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수료식에 보니 탈락한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
그 10만원 때문에?

세상은 살아가는 방법이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방법은 그리 권장하고 자랑할 만한 것은 못되지만 그렇다고 부끄럽고 숨길 일도 아니다.
이렇게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하며 웃음이 깃든 생활을 하고 있음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나의 앞날에 영광이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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