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던 흘러가게 마련이다. 경황 중에 아파트 경비원 생활을 한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갔다. 무슨 일이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려면 거기에 필요한 시간과 기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요즈음 느끼는 것은 하찮은 경비원 생활을 하면서도 정신없어 하는데 아파트 경비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나라의 큰살림을 책임지는 대통령이나 장관 같은 경우 취임 몇 달, 심지어는 며칠 만에 큰 문제에 봉착했을 경우 내용 파악도 안 된 상황에서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가 몹시 궁금하다.
아침 5시,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를 가는 길이나 아니면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60대 후반의 노인들이 오고가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복장이나 모습들을 보면 대부분 아파트 경비원들임을 알 수가 있다. 그전에도 새벽에 운동을 하러 자전거를 타러 나가면서 분명이 보았을 테지만 그런 기억이 안 나는데 요즈음은 보이느니 경비원 할아버지들뿐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된다.
아파트 경비원들은 스스로 직업분류상 최하위의 직업이라고 인정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나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언제든지 가기를 원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언짢은 일이 있으면 당장 때려치운다고 큰소리를 친다. 그렇지만 막상 해고를 당하면 아무 일도 못하는 참으로 한심한 처지의 사람들이다. 나이 70에 벌어놓은 돈도 없고, 배운 재주나, 가진 기술이 없으면 별 방법이 있을리 없다.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대인관계는 참으로 중요하다. 같이 일하는 동료나, 매일 대하는 고객, 또는 주위 사람들을 잘 만나야 하고 그들을 대하는 대인관계 방법도 능숙해야 한다.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사람 때문에 힘든 것은 참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한두 번씩은 느껴 보았다. 우리는 남에게 얘기할 때는 누구나 다 그럴듯하게 잘한다. 다 컨설턴트(consultant)요 인생의 달관자다.
아파트 경비 일을 하다 보면 사람들의 포장되지 않고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들을 엿 볼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선과 악의 비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맹자의 性善說과 순자의 性惡說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性惡說 쪽에 무게를 실리고 싶다.
사람의 본성은 큰 일 보다는 작은 일에서 나타난다. 나는 예전 산행중의 일을 가끔 생각하며 극한상황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사람의 본성을 생각 한다.
60년대 하계 지리산 등반 중에 천왕봉을 오른 우리는 하산 길을 칠선계곡으로 잡았다. 당시에는 칠선계곡엔 길이 없던 시절이라 방향만 잡고 하산을 시작했는데 더운 여름 날씨에 폭이 넓은 기스링을 메고 나뭇가지를 헤치며 하산 하면서 무진 고생을 하였다. 한참을 헤매다 보니 계곡이 나타나고 계곡의 물을 본 우리는 너무나 반가워 그대로 물속에 첨벙, 불처럼 달아오른 몸을 식혔는데 즐거운 휴식도 잠간, 우리는 하산을 위해 다시 출발을 했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짐 때문에 어깨가 빠질 것 같은데 수통에 물을 담아갈 이유가 없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모두들 슬금슬금 물통의 물을 한 방울도 남겨놓지 않고 버렸다. 가다가 목마르면 엎드려 물을 마시면 그만이다.
그런데 선두가 길을 잘못 들었다. 계곡 길을 내려 가다보면 잠간씩 계곡에서 벗어나기도 하는데 이번에 벗어난 길은 계속 능선으로 향했고 계곡은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데 그러나 이미 되돌아가기엔 계곡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 있었다. 염천의 한낮에 잡목지대를 헤치며 내려오다 보니 땀은 비 오듯 쏟아지는데 먹을 물은 한 방울도 없다.
“누구 물가진 사람 없나?”
모두들 묵묵부답, 하긴 물이 있으면 선배 주려고 남겨 놓을 일이 없겠지…….
머리가 벗겨질듯 뜨거운 태양빛은 작열하고 있는데 계곡은 나타나지 않고 타는 듯 한 갈증은 참을 길 없고 완전히 초죽음이 되어 내려가다가 왼쪽을 내려다보니 저 아래 집이 한 채 보인다. 순간 환호성이 터졌다. 집이 있다는 것은 샘이나 물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집을 못 본 선두는 이미 능선을 따라 내려갔지만 우리는 뛰다시피 집을 향해 내려가 보니 빈집의 작은 마당 한편에 조그만 샘이 보인다. 모두들 머리를 박고 물을 먹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 순간엔 선배고 후배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평상시엔 선배님 먼저, 형님 먼저 하던 그들의 눈엔 극한 상황에 접하자 오직 물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군대 제대 후 복학생으로서 가장 고참인 나는 뒤에 서서 그들이 물을 다 먹을 때 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물을 마신 대원들은 그대로 퍼져서 꼼짝 들을 못한다. 선두에 가던 대원은 우리가 집을 향하는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쫓아오지를 못하는데 그 역시 완전히 탈진한 상태다. 나는 물을 마신 뒤 수통에 물을 담아가지고 그 대원에게 갖다 주었다.
“나쁜 놈들”
그 순간 나는 화가 났지만 아직은 훈련이 덜된 어린 학생들인 그들이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 아무 소리 안했다.
경비초소 옆에는 분리수거장이 있다. 초소 안에서 주민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엿본다.
분리수거장에는 종류별로 용기들이 있어 쓰레기들을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나마 흉내라도 내는데 아무도 없는 것 같으면 본성이 나온다. 음식물 쓰레기의 경우 비닐봉지에 담아온 것을 통 안에 버리고 비닐은 그 옆의 통에 따로 버려야 하는데 그것이 귀찮으면 비닐봉지 채 슬그머니 버리고 가버린다. 큰 봉지에 담아가지고 온 여러 종류의 쓰레기도 아무도 없는 것 같으면 그대로 버리고 간다. 누가 있으나 없으나 제대로 양심적으로 버리고 가는 사람은 10사람 중 3사람이나 될까? 이런 비율은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적용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과시적인 행동은 마음만 먹으면 기가 막히게 잘한다. 월드컵 응원 뒤 쓰레기 자진수거에 대한 칭찬의 기사가 난 뒤 다음 응원행사장은 뒤처리가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데 이런 분위기가 식으면 역시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아파트 경비원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수준은 선진국을 따라 가려면 아직 멀었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권리 주장은 대단한데 의무를 이행하는 데는 너무나 인색하다.
나는 요즈음 한 가지 걱정이 있다. 고층 아파트의 경우 화재나 긴급사항이 발생했을 경우 대피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비상시에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이용해서 대피하도록 되어 있다. 9.11테러당시 사고가 나자 사람들은 그 높은 무역센터 빌딩을 걸어서 내려왔다.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연기가 자욱해 앞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계단의 난간을 잡고 더듬거리며 내려와야 하는 상황에 계단에 짐을 쌓아 놓거나 자전거를 가로 세워 놓으면 깜깜한 가운데 내려오던 사람들은 걸려서 넘어지게 된다. 그러면 뒤에서 뒤 따라 오던 사람들은 그 위에 넘어지고…….

또 반대로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막혔을 경우엔 옥상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옥상으로 통하는 문은 모두 잠겨있다. 불량소년들이나 이상한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비상시에 옥상으로 올라가려던 사람들이 문이 잠겨 있으면 꼼짝 못하고 갇혀서 참사를 당하게 된다. 우리가 가끔 신문지상에서 유흥업소 화재 시 비상구 문이 잠겨 여러 명 사망이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아파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비상구 열쇠를 내가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화재나 지진 같은 큰 사고가 났을 경우 나는 옥상의 문을 열기 위하여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까?
이런 문제를 여러 사람에게 얘기했지만 별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핀잔을 준다. 그런 얘기는 여러 번 나왔지만 주민들이 협조를 안 하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문이 잠긴 책임소재를 밝힐 때 주민들이 과연 내 편을 들어줄 것인가?
세상을 살면서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얘기가 있다. 내가 경비원생활을 하는 동안 부디 이런 사고가 안 나도록 기도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해서 남보다 힘든 경비원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
나는 경비원생활을 한 달 하면서 몸무게가 5kg이 빠졌다. 남들은 몸무게 줄이려고 거금을 투자하는데 나는 돈 벌면서 다이어트를 하니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세상일은 항상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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