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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일기

아파트 경비원 (10-2)

by 남상태 2023. 6. 8.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려면 나름대로 요령이 필요한데 경비직 또한 마찬가지다. 직장에 새로운 사람이 오면 모두 관심을 갖는 법, 직장의 책임자는 신입 직원이 과연 제대로 적응할 것인가 걱정이 안 될 수가 없고 다른 경비원들 역시 궁금한 눈초리로 주시를 한다. 내가 근무하는 아파트의 경우 12명 단위로 반장이 두 명이 있고 24시간 교대인 관계로 실장이 두 사람, 모두 50명의 인원이 있으며 전체적인 책임을 지는 소장이 한사람 있다.

 

군대에 처음 입대를 하고 부대 배치를 받으면 신병은 상급자들에게 잔뜩 주눅이 들게 마련이다. 일병도 어려우니 상병, 병장은 더할 나위 없고, 장교는 아예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보인다. 이곳 또한 계급 사회인지라 층층시하의 제일 말단인 나는 잔뜩 긴장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처음 온 주제에 나이나 앞세우고 옛날 얘기나 한다면 며칠 있다가 스스로 짐을 싸는 수밖에 없다.

어떤 경비원이 신입 시절의 경험담을 얘기한다. 근무를 시작한지 이틀인가 되는 날 누가 와서 무언가를 물어보기에 대답을 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그 아파트의 동대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동대표가 새로 온 경비원이 인사도 안하고 주민을 대하는데 퉁명 스럽다고  관리 사무소에 얘기를 해서 다음날 목이 잘렸다고 한다.
모든 경비원들은 동대표가 대단한 존재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를 한다. 동 대표 정도가 그런 정도의 세도를 부릴 정도면 정부 고관정도 되면  얘기의 대상이 안 된다. 세상의 이치는 다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있는 대로 자세를 낮추고 누구든지 눈만 마주치면 인사를 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편의 반응이 재미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인사를 하는 나를 멀뚱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같이 인사를 한다. 어린 아이들은 오히려 깍듯이 인사를 잘한다. 걱정했던 시건방진 젊은 여자들의 횡포도 내가 먼저 아는 체하고 인사를 하니 그렇게 막가는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근무한지 둘째 날인가 되는 이른 아침, 교대를 하고 경비실 안의 정리를 하고 있는데 한사람이 차를 타고 나가려다 길목에 불법 주차를 해 놓은 차가 눈에 거슬리는지 차 주인에게 차를 빼라고 연락을 하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나갈 수 있는데 조금 심술을 부리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전화를 하니 차 주인이 나오는데 생긴 모습이 심상치 않다. 아니나 다를까 인상을 쓰면서 단박에 시비를 건다. 오늘 새벽에 들어와서 차를 댈 곳이 없어 이곳에 댔는데 다른 차들은 가만 두고 자기 차만 빼라는 이유가 뭐냐고 따진다. 그리고 나가려는 차를 노려보면서 충분히 나갈 수가 있는데 곤히 자는 사람을 깨운다고 화를 내기에 조용히 달랬다.

 

“글쎄 내가 봐도 너무하네요, 충분히 차를 뺄 수가 있는데 왜 그러는가 모르겠네요”
우선 화가 난 사람 편을 들어 나가려는 차 주인을 공동의 적으로 만든 뒤에

 

“다음에 늦게 들어오셔서 차를 댈 곳이 없으면 차를 아무데나 주차시키고 저한테 열쇠를 맡기세요, 그러면 나중에 제가 차를 빈자리에 주차시키겠습니다. 아침에 화를 내시면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니 마음을 푸세요”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히 달래니 그 사람은 투덜대면서 차를 빼주면서
“그럴 것 까지는 없고요, 저 사람 가끔 보는데 아주 건방져요”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어느새 한편이 되었고 다음에 만날 때는 반갑게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됐다.

처음 하는 일은 숙달된 사람보다 시간도, 힘도 더 들게 마련이다. 자동차를 처음 배울 때는 전방을 주시를 하느라고 백미러고 뭐고 볼 엄두도 안 나지만 어느 정도 운전이 익숙해지면 전화도 받고 지도도 보고 별 짓을 다하는 여유를 부린다.

전에는 아파트 경비원은 앉아서 신문이나 보고 시간이나 때우는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직접 해보니 보통 바쁜 게 아니다. 물론 아파트 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엔 하루 종일 종종걸음으로 왔다갔다 하다 보니 다리에 알이 배길 정도다. 등교 시간의 교통정리, 아침 청소, 22층 양쪽 계단의 순찰, 수시로 쌓이는 쓰레기의 분리 작업, 잡초 제거, 택배와 등기의 수령, 야간 순찰, 그리고 기타 잡일 등을 처리하다 보니 가만히 앉아 있을 틈이 없다. 다른 초소는 별로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은데 요령이 없어서 그런지 나 혼자만 바쁘다.

경비실에 앉아 날밤을 새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를 않다. 깊은 밤 혼자 앉아 허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별 생각이 다 든다. 아픈 허리도 문제지만 먹는 것이 부실하고 긴장을 해서 그런지 며칠이 지나면서 손에 쥐가 자꾸만 난다. 급한 대로 근육경련개선제를 사서 먹었지만 그 효과가 단박에 나는 것은 아닌 듯 아무래도 며칠 고생을 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이 살면서 젊어서의 고생은 사서도 하지만 말년 고생은 할 것이 못된다고 했는데 내가 아무래도 그 말의 뜻을 몸으로 체험을 하는 듯하다.

모든 일은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듯이 가을이 되어도 거둘 것이 없는 나는 빈 논을 보며 한탄 하고 있다. 누구를 탓할 것 없이 그 고통 또한 내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그나마 아직은 이런 일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내 자신의 건강을 고마워해야 한다고 스스로 위로를 해 본다. 모든 일은 자업자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