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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일기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10-1)

by 남상태 2023. 6. 7.

* 이글루스 블로그의 서비스 종료로 그 자료들을 티스로리로 이전 작업중입니다.

 

2017년 7월 7일 

 

근래 들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들을 자주 한다. 그런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대학 졸업한 사람이 청소부 모집에 응모를 해서 합격을 한 후 일을 열심히 한다는 신문 기사가 나기도 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흥미위주의 신문 기사 내용이지 당사자는 그렇지 못해 사진도 뒷모습이고 이름도 익명으로 나와 있다.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사업 운이나 직장 운이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는 일마다 안 되고 다니는 직장마다 별 재미를 못 보는 사람도 있다. 물론 개인적인 능력의 차이도 있겠지만 이것은 꼭 그 사람의 능력만 가지고 결정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말년에 얻은 직장인 아파트 경비원, 그것도 나이 제한에 걸려 연줄을 넣어서 어렵게 얻은 일자리인지라 감지덕지 고마워해야 할 텐데 마음이 이처럼 복잡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처음 일자리를 소개한 후배가 관리사무소에서 고학력은 아무래도 부담스러워하니 이력서에는 고등학교 졸업으로 적으라고 충고를 한다. 하긴 아파트 경비원을 하는데 대학 졸업장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아파트 경비원의 일자리는 항상 갑자기 생긴다. 일반 회사와 달리 24시간 맞교대를 하는 경비원은 그날 당직자가 출근을 하지 않으면 급히 충원을 해야 한다. 아파트는 경비를 직접 고용하는 것이 아니고  아파트와 계약된 경비회사가 있어 그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력서를 제출하긴 했지만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던 차에 어느 날 갑자기 경비회사에서 나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취직이 되면 마땅히 반가운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갈등을 느끼다가 일단은 해당 아파트 관리소 사무소에 가보기로 했다.


소장과의 면담자리, 마주앉아서 조금은 조작(?)된 내 이력서를 찬찬히 살펴보던 관리소장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보기에는 나이보다 상당히 젊어 보이고 건강해 보이시네요. 그런데 여행사 CEO까지 하던 분이 이런 일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나를 보더니 조금은 미덥지가 않은지 CEO라는 직함까지 거론하며 일단은 딴죽을 건다. 그래도 명색이 면접 자리인데 여기서 까지 딱지를 맞으면 무슨 망신인가?

“그건 옛날 얘기이고 회사 망한 뒤  더 험한 일도 했는데 일할 자신이 없으면 응모를 했겠습니까?”

 

진지한 나의 대답에 소장은 어느 정도 안심을 했는지 그러면 지금 당장 근무에 들어가란다. 소장의 갑작스러운 주문에 내가 당황을 했다.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의 당장 현장 투입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오늘 마침 약속이 있어 나가려던 참인데 전화를 받고 잠간 들렸습니다. 꼭 지금부터 근무를 해야 하나요?”
 “ 그러면 저녁 6시 부터는 가능합니까?”

그것까지 못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잘릴 것 같다.

“알았습니다, 저녁 6시까지 나오겠습니다”


약속은 무슨 약속, 집에 돌아와 혼자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결국 나의 인생길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인가?

누가 뭐라고 해도 아파트 경비원이라는 직업은 그리 내세울 만한 직업은 못된다. 경비원들 스스로도 막장인생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70이 다된 나이에 남들은 시골에 전원주택을 계획하고 금년여름 해외여행 얘기나 하고 있는 판에 아파트 경비원이라니?

 

남들은 쉽게 얘기한다.
 “용기가 대단하십니다”

쥐뿔은 무슨 용기?  막다른 골목에서 할 수 없이 하는 일이지 내가 특별한 용기가 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굳이 숨길 일도 아닌지라 일단은 만천하에 공개하기로 했다. 내스스로 마음의 다짐을 하는 의미도 있고 이런 직업을 가져보는 것도 별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면서 생활이 궁핍해지면 삶의 여유가 없어지고 삶의 여유가 없어지면 마음의 여유 또한 없어진다. 곡간에 양식이 넘쳐나면 그 사람의 표정은 자신감과 여유가 넘쳐나지만 그날 저녁 끼니가 없어 어린자식들을 굶겨야하는 가장의 얼굴은 절망과 저주의 표정이 될 수밖에 없다.
내 스스로 어찌 할 수 없을 때의 심정은 결국은 있는 자에 대한 미움과 원망으로 변한다. 세상에 대한 증오,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증거다.


준비 안 된 가운데 시작한 경비원의 일은 모든 것이 서툴기만 하다. 알아야 할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아 정신이 없다.

아파트 경비원의 수칙 제 1조는 주민에게는 어른 아이 구별 말고 무조건 열심히 인사를 하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안하던 인사를 열심히 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조의 반장이 와서 이것저것 우선 알아야 할 일들을 두서없이 가르쳐 주는데 정신을 집중 하고 기억하려 하지만  낯선 일들이라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내가 담당한 동은 50평형으로 88세대가 입주해 있는 22층 건물인데 출입구가 두 군데다. 출입문 옆에 암호를 입력하게 되어있어 두 군데 암호를 가르쳐 주는데  처음 접하는 숫자를 잊지않고  빨리 기억하려니 머리에 쥐가 나려고 한다.

 

22층의 두 군데 계단 순찰은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지만 내려 올 때는 걸어서 내려 온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버리는 쓰레기의 분리 방법과  7, 80대 정도의 주차 차량 번호 기록, 일지 정리, 그리고 야간 순찰 방법 등등 도저히 한 번에 접수가 안 되는데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진땀이 다 난다.

밤 12시부터 4시 사이에 도는 1시간 정도의 순찰 코스는 체크 포인트가 12군데나 되는데  미로 같은 지하 주차장을 뱅뱅 돌다 보면 어디가 어딘지 도저히 구분이 안 간다.


교대는 아침 5시, 먼동이 터올 무렵 처음 보는 나의 교대 자가 출근을 하여 인사를 한다.

 

정신없는 가운데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나니 내가 과연 앞으로 이일을 할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결국 나는 아파트 경비원이 되었다. 그런데 경비원도 좋고 막장 인생도 좋지만 이제는 산이고 여행이고 모두 힘들게 생겼으니 그 아쉬운 마음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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