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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필리핀 잠보앙가의 추억

by 남상태 2023. 6. 1.

2011.2

몇년전 다녀온 잠보앙가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남쪽 끝으로 1시간 반을 더 가야하는 곳인데 거리가 우리나라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것 보다 조금 더 먼 곳이다.

 

여행 목적은 골프투어의 현지답사인데 골프라고는 생전 해보지도 못한 주제에 골프장 답사라니 조금은 웃기는 얘기다.

필리핀은 6.25때 우리나라에 지원군을 보낸 나라로 옛날에는 제법 잘사는 나라로 인식이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역전이 되어 필리핀 사람들은 한국하면 어떻게든지 한번 가봤으면 하는 선망의 대상국으로 생각한다.

그런 필리핀의 변두리 지방인 잠보앙가에 사는 사람들은 마닐라에 한번 가는 것이 또한 평생의 소원이기도 하다.

생활 상태는 우리나라 60년대 후반, 아니면 70년도 초 정도의 수준으로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몇 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듯 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이러한 잠보앙가에 유일한 골프장이 하나 있는데 그 주인이 한국 사람이다. 25년간 국가로부터 임대 권을 얻어 올해로 3년이 되었다고 하니 그동안 고생이야 오죽 했겠는가?

 

이 골프장의 방사장님은 재미있는 분이다. 나이는 60이 좀 안되었고 인상이 좋은 분인데 이런 어려운 사업을 하면서 필리핀 말은 물론 영어도 신통치 못하다. 그런데도 이곳 사람들을 용케도 지휘하면서 할 일은 다한다.

 

바닷가에 있는 이 골프장은 역사가 10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100년 전에 우리나라에 과연 골프장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현재의 우리나라와 필리핀을 다시 한 번 비교하게 된다.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골프장의 여건은 나로서는 평가할 능력이 없으니 보류하기로 하고 내가 놀랜 것은 골프장이 아닌 잠보앙가 시내 뒤에 있는 산에서의 일이다.

 

사실 나는 골프장 보다는 근교에 이름난 산이나 관광지가 없나하고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골프장 방사장이 하루는 산엘 가보자고 한다. 나는 속으로는 신이 났지만 "웬 산?" 하고 놀랜 척하니 가보면 뒤로 자빠질 것이니 준비 단단히 하라고 한다. 이산은 이곳 중국계 필리핀 부자의 소유인데 방사장은 그 중국인과 친분이 있어 특별히 드나들 수 있다고 한다.

 

동내 뒷동산 같은 야트막한 산에 무슨 놀랠 일이 있겠나 하고 궁금함을 참고 찝차에 올라탔다. 산길이 포장이 안 되어 일반 승용차는 못 올라간다는 부연 설명이 있어 제법 험로인 모양이구나 생각하니 속으로는 더욱 신이 났다.

시내를 빠져 나간 뒤 산길로 접어들면서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길은 점점 험해 진다. 흔들리는 차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은 너무 힘을 주어 쥐가 날 것 같다. 이리 저리 꼬불꼬불 산길을 찝차는 잘도 올라간다. 30여분 올라가니 제법 고도가 높아지면서 주위의 경관이 눈 아래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야자나무, 바나나 나무 등 열대식물들과 아름다운 색깔의 꽃들이 보였지만 이곳에서는 너무 흔하니 대접을 못 받는다.

 

그림같은 바다에는 산타크루즈 섬이 납작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파도가 세게 치면 섬을 덮어버릴 듯 너무나 작고 초라해 보인다. 산 중간 중간에는 산족들의 집이 간간히 보이는데 이런 곳에서 무얼 해서 먹고사는지 자못 궁금하다.

 

마침내 산 정상에 차가 도착하자 뜻밖에도 길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문이 보인다. 문안에는 조그만 경비실이 하나 있는데 소녀가 앉아 있다가 자동차 크랙션을 울리니 나와서 확인을 한 뒤에 문을 열어 준다. 문안으로 들어서서 조금 더 올라가니 찻길은 끝난다. 차에서 내리니 평평한 정상 부분에 정자 같은 집이 보이고 그리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산꼭대기에다 웬 집을 지었나 하고 계단을 올라간 순간 나는 깜짝 놀랬다. 놀랍게도 정자 앞에는 푸른 타일이 깔린 S자 형의 제법 큰 수영장이 물을 가득 채운 채 폼 나게 우리를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수영장 끝은 수영장물과 바닷물이 이어져 보여 가히 환상 적이다. 밝은 태양빛 아래 산 정상에서 보는 수영장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면서도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나는 실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수영장 앞에서 과감히 옷을 벗었다. 수영장은 수영을 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팬티 바람으로 물속에 들어가니 뜨거운 태양에 달구어진 물은 적당히 따뜻하다. 수영장 길이는 약 35미터 정도 되는데 맑은 물을 헤치며 혼자서 수영을 하는 나는 그 순간 이 세상 최고의 귀족이 되었다.

"좋다, 뒤로 넘어져도 물속에서 넘어져야 머리를 안 다치지"

수영장 끝까지 가니 그 밑은 낭떠러지이고 저 멀리 산 아래 잠보앙가의 시내와 바다가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방사장의 재촉에 아쉬운 수영을 끝내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다음 코스로 가자는 것이다.

"이런 산꼭대기에 수영장을 채울만한 물이 나오나요?"

"이 물은 산 밑에서 차로 전부 날아온 것입니다"

"오! 놀라워라"

이 말은 이럴 때 쓰기에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수영장만 해도 놀래서 자빠질 일인데 또 다른 곳이?



이번에는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물에서는 자빠져도 걱정이 없지만 평지에서 자빠지면 다칠 텐데 하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는데 차가 이윽고 정차를 한다. 정원수와 꽃으로 입구를 꾸며 놓은 아름다운 터널이 보인다. 집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모양이다. 차에서 내려 정원수 터널을 지나 통나무로 예쁘게 계단을 꾸며 놓은 곳을 돌아서 내려가는데 양쪽에는 마치 표본 온실 속을 걸어가는 듯 갖가지 꽃들과 관엽식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몇 구비를 돌자 나타나는 숲 속의 대나무로 지은 별장, 나는 갑자기 맥이 풀린다.

"아!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그래도 볼건 봐야 한다. 예쁘게 꾸민 방에는 침대가 보이고 가구가 완벽하게 갖춘 아름다운 방이 그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방사장이 한마디 거든다.

"사모님 모시고 와서 며칠 쉬시다 가시지요!"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나도 그러고 싶어요”















절벽 위에 만들어 놓은 대나무집 홈바에는 술과 음료수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데 관리인이 나와서 차를 한잔 씩 따라 준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저 아래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는 순간 나는 내손에 찻잔이 들려있는지 조차 잊고 있었다.

"아!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자꾸 슬퍼지지?"

 

하산하는 자동차 속에서 나는 하루 종일 골퍼들을 따라다니며 햇빛을 가려주는 양산을 받쳐주던 나이 어린 "야야"라는 "엄브렐러걸" 생각이 났다. 뜨거운 햇빛 속을 걸어 다니면서 받는 하루의 대가는 100페소, 우리나라 돈으로 3천원이 채 안 되는데 그나마 며칠 만에 찾아온 일감이 너무나 신이 나서 연방 싱글벙글 입을 다물 줄 모르던 그 소녀의 얼굴이 수영장의 모습 위에 자꾸만 오버랩 된다.

그러나 필리핀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활형편에 비해 참으로 낙천적으로 산다. 돈도 없고 가진 재산도 없지만 그런 가운데 가족들과 그리고 이웃들과 어울려 참으로 정답게 살고 있다.

“그래 작은 것에도 진정 고마워 할 줄 아는 사람이 정밀 행복한 사람이지”

 


잠보앙가 골프장에서 같이 간 일행들은 며칠 동안 골프장을 전세낸듯 신이 나서 골프를 치고 있는데 골프를 칠 줄 모르는 나는 심심하기 짝이 없다. 역시 골프를 안치는 같이 간 후배가 골프장 근처에 자기가 아는 집이 있는데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한다. 전에 왔을 때 근처 해수욕장에서 그 집 식구들과 알게 되었는데 그 뒤에 아주 친하게 지내며 이번에 약 6개월 만에 다시 온 김에 한번 찾아가려던 참이라는 것이다.

 

"당신이야 상관없지만 초대를 받지도 않은 내가 가는 것은 실례가 아니야?"

"아니 괜찮아요. 대환영을 할 겁니다. 식구들이 아주 많아요. 아버지, 어머니와 자식이 8명이나 되는데 대학교 3학년에 다니는 딸은 아주 미인이에요. 그리고 어린 여동생들도 둘이 있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미인이 많은 집이라는데 내 마음은 갈등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 나는 심심해서 몸이 뒤틀리던 참이 아닌가?

"좋아, 갑시다"

 

그 집은 골프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밖에 안 된다고 하니 차를 타기가 어중간하다. 걸어가는데 햇볕이 뜨거워 머리가 벗어질 것 같다.

"머리가 더 벗어지면 안 되는데!"

 

땀이 나지만 모자는 열심히 썼다. 길가의 야자수 잎도 축 늘어져 있다. 이곳은 지금이 건기로 5개월째 가물어서 물난리라고 한다. 골프장의 잔디도 많이 죽어있는데 이 달 말부터 비가오기 시작하면  풀들이 금방 무섭게 자란다고 한다.

 

땀을 흘리며 한참을 걸으니 판잣집들이 모여 있는 작은 동네가 나타난다. 우리나라 달동네 집들과 비슷하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동네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본다. 남의 집을 방문하는데 빈손으로 갈 수가 없어 동네의 구멍가게로 갔다. 무엇을 사가야 하나 하고 진열품을 보니 모두 먼지가 잔뜩 쌓여 있고 사들고 가기가 민망할 정도의 것들만 있다. 그래도 이것저것 물건을 고른 뒤에 계산을 하는데 물건이 너무 많아(?) 가계 아줌마가 쩔쩔 맨다. 옆에 있던 아들까지 합세를 하여 어렵게 계산을 끝낸 뒤 돈을 내려는데 누가 뒤에서 오더니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전에 자주 왔다 갔다 한 후배를 동네 사람들이 알아보고  연락을 해서 마침 집에 있던 대학생 딸이 쫓아 나온 것이다. 동네가 과연 좁기는 좁다.

 

어느 집 문인지 구분이 안 되는 다세대 집안 마당으로 들어서니 한쪽으로 안내를 한다. 마당과 연결된 방은 문밖과 집안이 잘 구별이 안 되어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갔다가 가만히 살펴보니 모두 신발을 벗고 있다.

"아이고 실례"

다시 신을 벗으러 방밖으로 나갔더니 상관없으니 신고 들어오라고 한다. 그래도 그럴 수가 없어 신을 벗어 방밖에 놓았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두 사람의 신발만 있고 다른 사람의 신발은 하나도 안 보인다.

 

아무려나 일단 방안에 들어가서 보니 일종의 거실 형태로 집 처마를 이어서 방을 꾸민 듯 내부는 방 모양만 갖추고 있는데 창문은 없고 햇빛은 우리가 들어온 문으로만 들어와 집안이 어둠침침하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땀이 주책없이 나는데 다행이 선풍기 하나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어 그 옆에 앉으려고 하니 상석이라고 하면서 바람이 안부는 안쪽 자리를 권한다.

 

이윽고 온 집안 식들과 인사가 시작이 되었다. 오빠 내외, 두 언니 내외, 그리고 그 집 아이들, 넷인가 다섯인가 헷갈리는데 이들은 모두 바로 옆집(옆방이나 마찬가지임)에 살고 있으면서 안방, 건넌방 구별 없이 들랑거려 모두 한 식구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 집 식구들을 소개하는데, 대학생 딸(멜라닌)과 아래로 남동생 둘과 11살(다링닌), 10살(차르메인)의 여동생 등 식구들을 모두 소개받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식구들을 소개 받는 중에 문득 문 쪽을 보니 방문 밖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 안을 들여다보느라고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하여 가만히 살펴보니 아뿔싸! 우리 신발을 그 많은 사람들이 사정없이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 불쌍한 내 신발"

그 상황에 일어나서 신발 챙길 계제가 아니라 내색은 못한 채 은근히 마음고생 많이 했다.

 

아버지, 어머니는 일하러가서 아직 안 오셨다고 하는데 아마도 연락 받고 곳 달려 올 것이라는 후배의 장담이다.

멜라닌은 내가 봐도 미인이고 어린 다링닌과 차르메인도 참으로 귀엽게 생겼다. 남자들이야 별 관심이 없으니 인물평은 할 필요가 없지만 아무튼 미인 집안임은 틀림이 없다.

 

우리가 사 가지고 간 맥주, 음료수 과자를 가지고 동네 파티가 열렸다. 우리가 앉아있는 좁은 의자에 멜라닌, 다링닌, 차르메인과 사촌 꼬마 아가씨들이 어떻게든 우리 옆에 끼어 앉으려고 호시탐탐 자리가 나기를 노리고 있다가 한사람이 일어나면 날쌔게 옆에 앉는다. 나중에는 무릎에도 사양 안하고 앉아 그야말로 우리는 인기가 짱이다. 내 평생 처음 겪어보는 호사다.

 

학교가 지금 방학 중이라 아이들이 모두 집에 있는 관계로 어느 집이고 애들로 만원이다.

처음 이름을 물어볼 때는 구분이 잘 안되어 종이에 적게 한 뒤에 이름을 외었다.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영어가 서툰 나도 그런 대로 의사소통이 된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하여 남자아이들은 제외하고 여자아이들만 앞에 세워 놓고 노래 강습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한국동요 시간” 제목은 "나비야" 다

옛날 에베레스트 트레킹 때 "고락셉"에서 아이들에게 "나비야"를 가르친 경험이 있어 강습의 진도는 쉽게 나간다.

 

아이들은 한국 발음이 어려운 듯 처음에는 고전을 하더니 잠시 후에는 제법 정확하게 노래를 한다. 노래의 내용을 번역해 주니 고개를 끄떡이며 좋아한다.

나중에는 어른들도 같이 따라하는 바람에  "나비야"가 잠보앙가의 작은 동네에서 메아리 치고 있었다.

 

격식도, 가식도 없는 있는 그대로를, 그리고 반가운 마음, 즐거운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고 있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나는 마음이 너무나 평화로워 짐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우리 집에 외국 사람이 왔다면 우리 집 식구들은 어떻게 그들을 맞이했을까?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메라닌의 어머니가 달려와서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저녁 식사를 하고 가라는 것을 극구 사양하고 문밖을 나설 때, 방 앞에 있던 우리의 신발이 수많은 사람들의 발에 짓 밟혀 엉망이 되었지만 나의 기분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 우리의 행복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작은 가슴속에 있는 것이야!"

 

이제 그들과 헤어진 지 한참이 되었지만 헤어짐이 너무나 섭섭하여 눈물을 글썽이던 다링닌과 차르메인 자매의 귀여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삼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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