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체바잘(3440m) 의 3천미터가 넘는 고도는 일반적으로 고소적응이 안된 사람에게는 괴로운 곳이다.
3천에서 4천 미터로 넘어가기 전 충분한 고소적응을 안 할 경우 그 증세는 점점 심각해져서 결국은 감당이 안 되는 경우까지 가게 된다.
우리는 남체에서 충분한 휴식을 하기로 했다. 오래간 만에 약식이지만 더운 물로 간이 목욕도 하고 이것저것 입맛대로 음식도 해먹으며 재충전을 위한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묵은 롯지 주인 파상은 이곳 사람치고는 조금 한량 끼가 있는 듯 한 젊은 친구인데 일본은 물론 한국도 다녀왔다고 하며 1년이면 몇개월만 집에 있고 주로 일본에 많이 가 있는다고 하는데 가게에 붙어 일을 하는 것 보다는 놀러 다니는 것을 더 좋아 하는 친구로 그의 사촌형까지 합세하여 우리는 이곳저곳 신나게 놀러 다녔다.
그의 사촌형은 영국에서 파일럿 학교를 다니는데 모처럼 집에 다니러 왔다고 하며 오랫동안 저지대에 있다가 오니 고소도 오고 다리도 아파 잘 못 다니겠다고 엄살을 떤다.
파상은 나중에 우리가 하산하여 카트만두에 있을 때 다시 만나서 같이 여행까지 하였다.
그러다 보니 롯지는 우리 집이나 다름이 없다.
저녁에는 파상이 한턱을 낸다고 하여 부인이 특별 음식을 만들어서 같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베이스캠프에 다녀와서 다시 들렸을 때는 야크실로 짠 장갑까지 선물로 주었다.
이곳에 며칠 있으면서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스페인 부부도 우리와 같은 롯지에 묵었는데 어느 날 우리가 밖에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 그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난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근처 마을에 구경을 갔다가 남편이 개한테 물렸다는 것이다. 이런 곳에 있는 개가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았을 리도 없고 병원도 없으니 이일을 어찌하면 좋으냐는 것이다. 실속 없이 키만 큰 친구가 어디가나 말썽이다.
물린 자리를 살펴보니 그리 심하게 물린 것은 아니고 약간의 상처만 난 정도라 내가 가지고 있던 약으로 소독을 해주고 빨간약을 발라주면서 옷 위로 물려서 광견병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아는 체를 하니 조금 안심하는 눈치다.
그 바람에 이곳에서는 내가 무슨 대단한 의사나 되는 줄 알았는지 누가 아프면 나를 찾는다.
방에서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홀에서 심부름하는 꼬마 녀석이 급하게 나를 찾는다. 홀에 빨리 좀 오라는 것이다.
웬일인가 하고 가보니 어떤 서양 아가씨가 홀 구석에 누워 있다. 꼬마 녀석은 나보고 환자를 봐 달라는 것이다.
이런 난감한 일이…….
청진기라도 있으면 폼이라도 잡을 텐데 무얼 안다고 환자를 치료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니 배를 가리킨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말로 환자의 상태를 물어보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먹은 음식은?”
“누들”
“음! 국수를 먹었구먼, 잘 좀 먹지 그랬어, 그렇다면 국수먹고 체했나? 체했으면 소화제를 먹어야지.”
혼자서 궁시렁 거리며 소화제를 가지고 와서 먹으라고 하니 얼른 받아먹는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지만 소화제를 먹여서 의료사고는 안날 테니 제일 만만한 처방이다.
조금 누워 있으라고 하고 나는 내방으로 와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한참 후에 홀에 와 보니 그 아가씨가 안 보인다. 꼬마에게 그 미국 여자 어디 갔느냐고 물어 보니 병이 나아서 갔다고 하며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스트롱 닥터”라고 칭찬을 한다.
일이 잘되려면 이렇게 되는 수도 있구나 스스로 감탄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여자는 체한 것이 아니라 고소 때문에 갑자기 쇼크가 왔었는데 편안히 누워서 쉬고 나니 저절로 낳은 것이 아닌가 라고 뒤늦게 상황 정리가 되는데 그 사실을 내가 나서서 스스로 밝힐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 후부터 내 별명은 스트롱 닥터가 되었는데 앞으로 나의 실체가 탄로 나지 않으려면 제발 아픈 사람이 나타나지 말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곳에 여유있게 놀러 온 사람들이 아니다. 원정을 대비한 정찰 임무를 가지고 온 사람 들이 아닌가?
사실 원정 생각만 하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막연한 기대와 의욕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닌데 그 준비 과정이 너무나 미약한 것 같아 불안해 진다. 그리고 직접 현지에 와보니 더욱 난감한 마음이 된다.
그러나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이미 일은 시작이 된 것을…….
식량, 짐 등을 재정비 한 뒤 포터를 두 사람 구했다. 이름이 안따레 라고 하는 남자 포터와 여자 포터인데 이곳에서는 짐을 지는데 남, 여 구별이 없고 임금도 차이도 나지 않는다. 포타비는 1일 식사제공을 하고 35루피로 하였다.
남자는 젊은 친구로 기본적인 공부를 한 것 같고 여자는 나이가 좀 들었지만 코걸이 까지 한 전형적인 네팔 여자다.
남자 포터는 우리 원정대가 왔을 때 메일런너로 고용해 달라고 미리 부탁을 한다.
남체 마을을 벗어나며 급사면을 올라 다시 한 번 군인초소에서 트레킹 허가증을 체크를 한 뒤 본격적인 에베레스트 트레킹은 시작되었다. 입산 신고를 한 뒤 언덕을 넘어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뜻밖에도 에베레스트와 로체, 아마다브람등의 산군이 한눈에 들어 온다. 왠만해서 보기 힘든 광경을 우리는 운좋게 볼 수가 있었다.
그동안 며칠 쉬어서 원기가 회복되어 걷는 것이 쉬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고 높아지는 고도에 대한 두려움만 가중 될 뿐이다.
업 다운을 반복하며 가다보니 강이 나오고 서스펜션 부릿지를 건너면서 3,250m의 풍기텡가 마을이 나온다. 힘들게 올라가는 길, 특별히 서두를 이유가 없어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트레킹 팀들의 모습이 많이 보여 "지리" 에서 올 때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길가에 앉아 점심준비를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 중에 낯이 익은 미국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맞아! 롯지에서 내가 치료해준 그 아가씨가 아닌가?”
그런데 그 여자는 나를 보고는 무심히 그냥 지나간다. 이럴 수가?
나를 혹시 못 알아보는가 하고 그 여자를 불렀다.
“유노우 미?”
“예스”
그러더니 다시 인사 한마디 없이 그냥 지나간다. 참, 누구 말처럼 싸가지 더럽게 없는 여자다.
“저 여자, 올라가다가 고소나 엄청 먹고 자빠져라”
화가 난 김에 조금은 심한 저주를 퍼붓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점심을 먹고 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올라온다. 한눈에 봐도 산에 다니는 사람들 같지 않아 눈여겨보니 세 사람의 일행 중 한사람은 큰 회사의 사장 같은 풍채고 어린 친구는 아들, 그리고 젊은 사람은 비서 정도의 구성으로 짐작이 된다.
편안한 여행 보다 이런 오지에서 고생을 하며 산행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좋아 보이는데 그들의 의욕이 얼마 안가 좌절 되는 모습을 보고 조금은 실망을 하였다.
점심 후에 사원이 있는 탕보체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중 크로키가 된 사람을 태우고 내려오는 말이 보인다. 바로 아까 올라갔던 그 일본 사장이 죽을상이 되어 실려 내려오고 있었다.
진심으로 동정이 가는데 제발 우리에게는 저런 시련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탕보체로 올라가는 길에는 마니 월의 모습을 자주 만날 수가 있는데 마니 월을 지나갈 때는 왼쪽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힘이 들다보니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헷갈린다. 그런 것이 무슨 대수냐 라는 생각도 들지만 큰 산에 들어오니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도 아니다. 초모랑마의 저주! 산신의 심기를 거슬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데 그를 무시할만한 용기가 나에게는 결코 없다.
주위에 도열해 있는 흰 산들의 위용에 기는 죽어 가고 고소의 공포 또한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하지만 그래도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 에베레스트의 B. C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어 온다.
마침내 3870m의 탕보체 사원이 있는 언덕 위에 올라서니 상당히 넓은 개활지가 나타나며 개활지의 초원 뒤로 설산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그중에 유난히 돋보이는 에베레스트의 모습은 정상부의 설연이 그들 중 가장 으뜸임을 표시하고 있는데 세계 최고봉을 보좌하며 좌우에 늘어서있는 거봉들의 모습은 우리를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든다.
눕체, 로체, 아마다부람, 캉텡카, 탐세루크, 캉데등 책에서나 말로만 듣던 그 대단한 산들과 나는 지금 첫 대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저들의 우두머리인 에베레스트를 그것도 한겨울에 오르려 하고 있다.
8848m라는 엄청난 높이의 그 산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도봉산에 갔을 때 도봉산 선인봉 위로 산을 10개를 쌓아 놓는 상상을 하다가 감이 안 잡혀 그만 둔 적이 있다.
자! 정신을 차리자. 하늘아래 뫼인데 오를 때까지 올라 보는 거다.
탕보체 사원은 히말라야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절이다.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치면 말이 안 된다. 이곳에서 하루를 묵기 위하여 롯지에 들어가니 군대 막사 같이 양편으로 나뉜 침상의 좋은 자리는 먼저 도착한 다른 팀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아무려면 어떠냐! 에베레스트 정상이 보이는 이런 천하의 명당자리에서 잠자리를 탓하는 것은 지나친 사치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인 롯지는 그야말로 인종 박람회장이다. 각자 자기네 나라 말로 떠들어 대는데 우리도 씩씩하게 한국말의 우수성을 과시 하였다.
다음날 아침 잠자리에 일어나 밖을 나오니 저 멀리 설연을 날리고 있는 에베레스트의 모습이 여전한데 이는 분명 우리가 세계의 지붕 아래로 들어와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몸이 피곤해도 가야할 길은 길은 가야만 한다. 탕보체 사원을 출발하자 초원지대가 나오고 이어서 숲을 지난뒤 조금 내려가면 임자 콜라를 건너게 된다. 그리고 다시 팡보체를 향해 올라가는데 고도가 높아지면서 이제 숲은 사라지고 돌들만 흩어져 있는 황량한 골짜기가 시작된다.
표현하여 죽음의 지대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삭막한 고산 지역의 풍경이 시작된다.
팡보체(3860m) 마을에 도착하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드문드문 떨어져있는 몇 채의 집들이 썰렁한 주위 풍경과 더불어 쓸쓸하기 짝이 없다. 돌무덤 밖에 없는 이런 황량한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이곳은 작년 양정 팀의 사다였던 겔젠의 집이 있는 곳이다. 집이 한 채 밖에 없으니 찾고 말고 할 것도 없는데 마침 겔젠은 없고 부인과 아이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돌을 쌓아서 만든 집안 구조는 요즈음 말하는 원룸 형태다.
부엌도 침실도 이쪽저쪽 구역만 정해져 있을 뿐이고 창문이 없어 어두컴컴한 집안은 불을 때면 연기가 빠지지 않아 기침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러나 이런 곳에도 웃음이 있고, 행복이 있고 사람이 사는 모습이 있었다.
어린아이가 계속 울어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아프다는 것이다. 병원 갈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약도 없어 저절로 낮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어린아이의 머리를 짚어보고 얼굴을 살펴보니 어림짐작으로 감기 같아서 가지고간 약을 적당히 먹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얼마 후에 아이가 웃고 놀지를 않는가?
나는 아무래도 “스트롱 닥터”의 팔자를 타고 난 모양이다. 어쩌면 이렇게 내 손길이 가는 족족 그 효과가 하늘을 찌를 수가 있단 말인가?
아이 엄마는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부모를 감동시키는 방법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곳에서의 에피소드 또 하나.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우리의 젊은 포터가 말하기를
“아웃사이드 에브리웨어” 라고 한다.
밖에 나가면 천지가 화장실인데 무슨 화장실을 찾느냐는 것이다.
돈이 많다고 물질이 풍부하다고 해서 우리의 행복이 최고는 아닐진대 , 바로 마음을 비울수 있는 이런 곳이 또한 우리의 천국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다음날 “팡보체” 마을을 출발하여 페리체를 향해 가는데 저 앞 갈림길에서 어디에서 숙박을 했는지 문제의 스페인부부가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그들은 왼쪽으로 가야 할 것을 오른쪽 딩보체 쪽으로 가고 있다. 소리쳐 부른 뒤 당신들 어느 쪽으로 가냐고 물어 보니 페리체라고 대답한다.
“이봐! 이 친구야 정신 차려, 페리체는 왼쪽으로 가야해”
그 이후 우리는 그 스페인 부부를 만날 수가 없었는데 여행 끝내고 자기네 집까지는 잘 갔는지 걱정이 된다.
작은 고개를 넘어서자 넓은 초원이 나타난다. 넓은 평야에 돌을 쌓아서 경계를 표시해 놓은 집들이 몇 채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페리체다.
4,240m의 페리체는 에베레스트 캬라반을 하는 중 가장 넓은 초원지역으로 4천 미터를 넘어서기 위하여 또 한 번의 고소적응을 하고 가는 곳이다.
페리체는 일본사람이 경영하는 고소병 치료 연구소가 있는 곳으로 산소치료기도 비치되어 있다.
페리체에서 보면 주위에 흰 눈을 이고 있는 타와체(6501m), 촐라체(6440m)등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깝게 이웃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 조금은 의아하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어느새 우리가 4,200m의 상당히 높은 지역까지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한 탓이리라.
페리체에서는 롯지를 이용하지 않고 텐트를 설치한 뒤 취사 시에만 롯지를 사용 하였는데도 출발할 때 주인이 쫓아와 숙박 요금을 청구하여 한동안 실랑이를 하였다.
초원을 지나며 경사가 완만한 길을 가는데 멋지게 생긴 서양여자가 혼자서 배낭을 지고 가다가 쉬고 있다. 영화에서는 멋있는 서양여자들이 많기도 하던데 여행하면서는 만나는 여자들은 영 기대에 못 미쳐 실망을 하던 차에 눈에 번쩍 띄는 멋진 아가씨를 보고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영어 능력이 떨어지니 결국은 아는 단어 몇 마디 가지고 써 먹는 수밖에 없다
“오! 유 스트롱 우먼! “
여자들은 아무래도 칭찬에 약하다.
그녀는
“오! 노”
하며 활짝 웃는다.
덕분에 힘든 산행 도중임을 잠시 잊을 수가 있었다.
4월 27일. 로브제를 거쳐 캬라반을 시작한지 14일 만에 마침내 고락셉에 도착을 했다.
"까마귀의 죽음" 이라는 뜻이라고 하는 고락셉은 에베레스트 쿰부 빙하지역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마지막 지역으로 고도가 5,150m나 된다. 이곳에는 돌로 쌓아 만든 집이 두 채가 있다.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봄에 올라왔다가 가을에는 아랫마을로 철수를 하는데 이사람들도 봄이 되자마자 올라온지 얼마 안 된다고 한다.
5,000m가 넘으면 산소가 평지의 반 밖에 되지 않아 일반적으로 사람이 살기가 힘든 지역이다. 그래서 고소적응이 안된 사람이 헬기를 타고 와서 높은 곳에 갑자기 내리면 그 자리에서 실신을 하고 만다.
오죽하면 카라반 내내 속 썩이던 이, 벼룩 등도 공기가 부족해서 죽고 마는 이곳 고락셉은 아마 지구상에서 인간이 생활을 할 수 있는 최고 높이의 지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닿을 듯 천장이 낮은 움막집에 들어가니 부부와 어린 남매가 있다.
여동생은 5, 6세 오빠는7, 8세 정도 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아이들은 투정도 부리지 않고 잘도 놀고 있다. 나이가 어리니 따로 떼어 놓을 수가 없어 이런 지역 까지 데리고 온 모양이다.
우리나라 동요 “나비야” 를 한국말로 가르쳐 주니 잘도 따라한다. 저희들끼리 놀면서도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라 오너라” 하고 서투른 발음으로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날씨가 추워 집안에서 자고 싶었지만 집이 너무 협소하여 집 옆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기로 했다.
저녁에는 라면을 끓였으나 고소증세로 속이 울렁거려 먹지를 못하였고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는 날씨 탓에 추워서 밖에서 서성거리기도 어려워 일찍 잠을 자기로 했다
그런데 너무나 길고 괴로운 밤이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다 아프고 머리도 아파서 약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물이 없다. 우리의 포터들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처음 계획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지역에서 하룻밤 야영하기로 했으나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이곳 고락셉에 짐을 놓고 하루에 베이스까지 다녀오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그러나 저러나 다음 본대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점점 걱정이 더 된다. 체력, 등반 기술 이전에 고소에 적응이 안 되면 모든 등반 계획은 허사가 되고 만다. 다른 원정대도 고소적응이 안되어 실패한 팀이 어디 한두 팀인가?
아침에 버너로 라면을 끓였으나 설익은 라면에다 울렁거리는 고산증세 때문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국물만 몇 목음 마신 뒤 포터들은 기다리도록 하고 친구와 둘이 출발을 했다. 어제 저녁도 못 먹고 아침도 굶은채 과연 베이스 캠프까지 갔다 올 수 있을 것인지 심히 걱정이 된다. 이런 고도에서는 라면을 끓일 때도 압력 솥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알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 옮기는 것이 그야말로 천근만근이다. 차멀미를 심하게 할 때처럼 속은 계속 울렁거리고 머리는 뻐개질듯 아프다. 천천히 걸어서 3시간이면 B. C 까지 도착한다고 했는데 그 세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이란 말인가?
점차 보이기 시작하는 이상한 형태의 세락(빙탑)들도 눈에 안 들어온다. 우리가 지금 걷고있는 이 계곡은 빙하 지역이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의 속력으로 서서히 흐르고 있는데 온통 돌투성이의 이지역이 흐르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우리는 비몽사몽간에 걸음만 무의식적으로 옮기고 있을 뿐이다. 어제와 오늘 사이 먹은 것이 없으니 배는 고프고 갈 길은 까마득해서 그대로 포기하고 싶어진다.
앞에 가는 강수도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걷고 있다. 자신과의 싸움. 명분과의 싸움. 고통과의 싸움, 내가 왜 이 길을 가야만 하는가 생각을 하면 해답이 안 나온다.
이를 악물고 오직 걷는데 만 열중할 뿐이다.
저 위 돌밭사이로 몇 사람이 내려온다. 그들 중 턱수염이 하얀 외국 노인이 내려오는 것을 보자 정신이 펄쩍 난다. 젊은 나는 죽을상을 하고 있는데 그 노인은 너무나 의젓하다. 진정 존경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했다. 60대 후반은 된 듯 한데 내려오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용기를 내어 다시 걷기 시작, 비틀 비틀하며 걷다보니 산으로 계곡이 막히며 돌밭위에 텐트가 쳐있는 것이 보인다. 아침 8시 반에 출발을 하여 12시 반에 도착을 했으 무려 4시간이나 걸렸다. 죽음의 행진란 것이 이런 것인가?
“ 오! 나는 마침내 에베레스트 베이스에 오고 말았구나!”
5,150m의 고락셉에서 5,500m의 베이스 캠프까지 고도차 350m를 극복하기가 이렇게 힘들줄은 정말 몰랐다.
앞에는 흰 눈을 잔뜩 뒤집어 쓴 푸모리봉(7,145M)이 우뚝 서있고 그 아래로 로라 언덕, 우측으로 아이스폴지역, 그리고 오른쪽에 눕체(7,879M)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아이스폴 지역은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기 위한 첫 관문 인데 등반대에게는 악명이 높은 곳으로 인명 사고도 많이 나는 곳이다.
그런데 가까이서 직접 보니 이상하게도 생각보다 규모도 작고 별로 대단해 보이지가 않는다. 그렇지만 베이스 캠프에서 아이스폴을 지나 캠프 1까지 직선 거리 4km도 안되는 이곳을 처음 오를 때는 하루종일 시간이 걸리고 그나마도 중간에 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고산에서는 거리감과 크기에 대한 감각이 현실과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베레스트 B.C에 설치되어 있는 텐트는 노르웨이 팀과 미국팀의 본부용인데 텐트에는 대원들은이 공격캠프로 올라갔는지
사람들의 모습은 안보이고 밖에서 인기척이나자 셀파 한명이 얼굴을 내민다.
우리는 금년겨울 이곳을 등반 할 한국 팀이라고 하니 시큰둥한 표정으로 자기는 한국 팀을 별로 안 좋아 한다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이 친구도 별로 싸가지다. 아무리 그래도 면전에다 대고 그렇게 말하다니...
아마도 전에 한국원정팀과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고소 때문에 죽을 맛인데 이 셀파와 얘기를 하다 보니 더 기분이 안 좋아 진다.
오래 머무를 상황이 아니어서 잠시 기념 촬영을 한 뒤 하산을 서둘렀다. 떠나면서 뒤돌아본 에베레스트 B. C 지역은 정리 안 된 채석장 같이 어지럽게 보인다.
“이곳에서 어떻게 한겨울을 보낼 것인가”
한심한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길이 없는데 중식도 못 먹고 다시 하산하는 길은 정말로 지옥같은 길이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고락셉에 겨우 도착을 하니 우리의 포터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허기가 지는데 저녁은 역시 먹을 수가 없어 텐트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수 밖에 별 방법이 없다. 눈이 제법 내리기 시작하고 기온은 영하로 떨어져 또다시 인고의 밤을 지내야만 한다.
끔찍한 고락셉에서 하산 하는날, 역시 아침은 걸른채 짐을 싸 가지고 하산 하는 길은 그래도 기분이 좋다. 이 끔찍한 고소에서 벗어 날 수가 있다는 희망이 우리에게 힘을 실어 주는가 보다.
어제 내린 눈이 햇빛이 비치기 시작하자 서서히 녹기 시작하는데 하산하는 발걸음은 상당히 빠르다.
내려오면서 팡보체에 들리니 겔젠 사다 부인만 반갑게 맞아줄 뿐 겔젠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여 뒷날을 기약한 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힘들게 올라간 길이지만 내려갈 때는 한결 수월하다. 고산증세도 씻은 듯이 없어졌다.
남체”에서 고락셉까지 올라올 때 4일 걸린 거리를 하산할 때는 2일 만에 달리듯 내려왔다.
남체를 거쳐 루크라 공항에 도착한 것이 5월 1일,
지리에서 부터 일주일 넘게 힘들게 걸어오며 이곳을 통과할 때의 심정이 새롭게 생각난다. 이제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고 가면 끝이다.
그 동안 고생한 포터들에게 임금을 계산해 주고 이별을 고할 즈음 남자포터는 손을 흔들고 떠나는데 여자포터는 갈 생각을 않고 계속 머뭇거린다. 보너스로 준 라면이 부족해서인가 하고 의아해 하다가 이제 가라고 손짓하니 갑자기 이 여자포터가 친구를 붙잡고 대성통곡을 한다.
친구는 놀래서 어쩔 줄을 모르고 옆에 있던 나도 이유를 몰라 당황을 했다.
순간, 임금이 부족해서 이 돈 가지고는 빚을 못 갚게 생겼으니 조금 더 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보너스가 작아 더 달라는 뜻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물어볼 수도 없어 더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만히 상황을 살펴보니 해답이 나온다. 친구를 붙들고 애처롭게 우는 그녀의 간절한 표정은 분명히 떠나는 애인을 보내기가 서러워 울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다.
“어허! 이럴 수가?”
남체에서부터 에베레스트 베이스까지 오고 가는 카라반 기간 중에 이 여자 포터는 친구에게 자기도 모르게 깊은 연정을 느끼게 된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이제 당신과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나요?”
말없이 통곡하고 있는 그녀의 애절한 몸부림을 무슨 수로 달랠 수 있단 말이냐?
한참을 울던 그녀는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체념을 한 듯 눈물을 흘리며 힘없이 걸어가는데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가슴이 아파온다.
사랑에는 국경도, 인종도, 나이도 상관이 없다더니 나는 바로 그 생생한 현장을 목격하였다.
나는 친구에게
“너 참 좋겠다. 나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
빙긋이 웃으며 말을 건네니 친구는 벌레씹은 얼굴이 되어 아무 말을 못하고 있다. 나는 웃음이 나오지만 이게 웃을 일은 아니다.
루크라 공항은 산비탈을 다듬고 풀을 깔아서 간이 활주로를 만들어 놓은 곳으로 비행기가 내릴 때는 언덕을 향해 올라가게 되어있고 이륙할 때는 위에서 아래로 달려 내려오다가 마지막 낭떠러지 부분에서는 항공모함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듯 하늘로 떠
올라야 하는 지극히 원시적인 형태인데 보고 있기만 해도 아찔하다.
활주로의 위와 아래 표고 차가 60m 나 된다고 하니 자연 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한 희한한 비행장이다.
그런데 이 “루크라” 비행장은 협곡에 있는 관계로 날씨 변화가 심해 비행기 운행 스케줄 또한 종잡을 수가 없다. 비행기가 이착륙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오정 9시에서 10시 사이로 그 시간이 지나면 기상이 불안정해서 이착륙이 불가능 하다고 한다.
활주로 옆에는 착륙하다 떨어진 비행기의 잔해가 보여 더욱 불안감을 조성한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가야할 5월 2일의 비행기 스케줄은 취소가 되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하루를 더 루크라 비행장 활주로와 담하나 사이인 롯지에서 보내고 다음날 조마조마하게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다행스럽게도 비행기가 뜬다는 소식이다.
예정된 출발일 아침, 혹시나 하는 걱정되는 마음으로 밖에 나가 비행기가 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도 같은 심정인지 모여서 카트만두 방향을 주시하고 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네팔 친구가 저기 비행기가 온다고 소리친다. 나는 먼 구름만 보이고 비행기는 흔적도 안보이는데 무슨 비행기? 한참 지나자 진짜 비행기가 조그 맣게 보이기 시작한다. 내 눈이 1.2 로 그리 나쁜 편이 아니데 이 친구는 얼마나 눈이 좋단 말인가? 나중에 들으니 네팔 사람들은 눈이 좋아 2.0 이 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탑승 절차 후 16인승 경비행기에 올라타고 나니 마치 장난감 비행기 같아 마음이 불안하다.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하자 흙먼지가 소용돌이를 친다.
이윽고 비행기가 계곡 아래를 향해 전속력으로 풀 밭길을 털털거리며 달리기 시작하자 승객들 사이에서는 비명소리가 요란하다.
어린이 공원에 있는 바이킹 놀이기구를 탔을 때 제일 높이 올라갔다가 내리꽂을 때와 똑같은 기분이다. 그 놀이 기구는 안전장치나 되어있지만 이 비행기는 천야만야한 낭떠러지를 향해 풀밭 위를 대책 없이 전속력으로 내려가고 있으니 정말이지 황당한 기분이다.
“아이고 나죽네”
겁이 나서 눈을 꼭 감는 순간 활주로 끝 낭떠러지에서 비행기는 공중으로 붕 떠오른다.
“휴, 살았구나!"
가다가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안심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히말라야 산줄기는 정말 끝도 없다. 우리가 걸었던 캬라반 코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저 아래로 세테, 쥰베시, 그리고 추위에 떨던 3,530m의 람주라 패스도 바로 눈 아래에 손에 잡힐 듯 내려다 보여 감회가 새롭다 .
카트만두에서 지리까지 버스로 12시간, 그리고 지리에서 루크라까지 발이 부르트도록 일주일을 걸어간 그 먼 거리를 비행기는 간단히 40분 만에 날라서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을 했다.
카트만두의 거리에는 여전히 소가 대로를 활보하고 있고 왕궁의 높은 나뭇가지에는 박쥐가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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