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에 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 중에 이 말의 의미를 감명 깊게 받아들일 때가 있다. 참으로 일이 안 풀리고 온갖 고생을 하던 일이 마침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커다란 희열을 느낀다. 아무런 장애 없이 순탄하게 일이 성사되었을 때보다 우리는 얼마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던가?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처음부터 천당에 살던 사람은 천당의 고마움을 몰라요. 그 사람은 그곳이 일상이기 때문에 그곳의 모든 좋은 점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지옥에서 고생하던 사람이 천당에 온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천당의 고마움을 느낄 수가 있겠지요”
한강변의 전망 좋은 최고급 아파트에 손님이 왔다가 넓은 창문으로 보이는 한강의 멋진 풍경을 보고 주인에게 감격해서 얘기를 한다.
“와! 이렇게 기가 막힌 풍경을 매일 보면서 생활을 하는 당신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인은 뜻밖의 대답을 한다.
“이 풍경은 손님 접대용이지요, 우리는 매일보고 있으니 좋은 줄을 모르겠어요”
우리는 등산을 할 때 아주 힘들게 올라갔던 산은 오래 기억한다. 죽을 고생을 하며 올라갔던 정상에서의 감격과 환호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올라갔던 정상에서의 기억은 그리 오래 남지를 않는다.
에베레스트(8,848M)는 세계의 최고봉으로 남극, 북극과 더불어 지구 3대 극점으로 불리 운다. 지금은 등반시즌에는 에베레스트 정상을 하루에 수백 명씩 줄을 서서 오르는 바람에 병목현상까지 일으키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이곳을 초등할 당시에는 많은 시간과 엄청난 고생, 그리고 많은 등반가가 목숨을 잃었다.
1921년에 시작한 에베레스트 등정 시도는 32년의 세월을 보내며 총 10회를 거듭한 뒤 드디어 초등의 영예를 얻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즉위식에 맞추어 세상의 중심이 영국이라 생각하던 영국의 등반대가 1953년 5월 29일 세계의 최고봉을 초등 한 것이다.
에베레스트의 초등으로 등반대장 존 헌트와 에드먼드 힐러리에게는 대영제국 제1의 훈장인 기사작위를 받았다.
고진감래라는 말은 이럴 때 적용되는 말이다.
사람들이 한평생을 살면서 전혀 굴곡이 없는 아주 편안한 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地位高下나 貧富의 차이를 막론하고 모두 기복이 심한 생을 살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정부의 고관들이나 재벌들이 어느 날 감옥에 들어가고 사회의 유명 인사들이나 연예인들이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자살까지 하는데 오히려 깊은 산속이나 섬에서 혼자서 생활하는 자연인이 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보고 과연 어느 것이 우리 인간들이 추구하는 삶의 길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곳 양양으로 온지 어느새 두 달, 그동안 살던 집과 다른 풍경, 주위 환경, 맑은 공기, 다채로운 먹거리 등이 새로웠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일상이 되면서 점점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지난날 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 들, 어떻게 사는 것이 말년을 후회 없이 살 수 있는 길인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생각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나는 김동길 선생의 “나이 듦이 고맙다” 라는 책을 읽고 있다. 나이 드는 것이 서럽지 무엇이 고마울까 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다 보니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누구라서 늙지 않으랴” 라는 현실에 대한 언급은 싫어도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나이가 듦은 한편으로는 고통일 수 있지만 그러나 또한 기쁨이며 설레임라고 선생은 말씀하셨다. 나이가 듦은 새로운 만남을 향해 가는 얼마 남지 않은 새로운 여정이라고 했으니 이 여정에 대한 이해를 하고 소망을 가슴에 품고 살자는 말씀은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나이가 들다 보면 희망과 소망이 소극적이 되고 만다.
젊었을 때는 삶이 고단하더라도 살아갈 많은 날들이 있으니 고생을 참을 만하지만 살날이 많지 않은 노인들은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나이가 들면서 苦盡甘來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는데 부모님 덕에 편안한 젊은 날을 보내다 말년에 고생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를 탓해야 할까?
우리 인생은 평탄하게 일생이 흘러가지 않는다. 좋은 시절이 있으면 어려운 시절도 오고, 어려운 시절을 맞으면 또 좋은 시절이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고 어려워도 너무 자신을 원망하고 한탄할 필요가 없다.
“苦盡甘來”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이 말을 떠 올리며 희망을 갖고 참고 버틴다.
옛날 중국 진나라에 차윤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머리가 영특한 차윤은 밤이나 낮이나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여름날 어두운 밤에는 반딧불이를 여러 마리 잡아다 그 불빛으로 책을 읽었고 손강이란 사람은 겨울에 내린 눈빛을 등불 삼아 책을 읽어 이 두 사람 모두 나라의 높은 벼슬에 올랐다. 사람들은 이두 사람을 형창과 설안 이라고 부르고 노력하는 사람의 본보기로 삼았다. 그리고 螢雪之功 이라는 의미는 갖은 고생을 하며 부지런히 학문을 닦아 성공한 의미로도 통한다.
우리는 어려울 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좌절하지 말고 苦盡甘來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고 끝까지 노력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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