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다보면 참으로 비정(非情)한 일들이 많다. 한세상 살아가면서 어떻게 좋은 일들만 있을까 만은 때로는 우리 주위에서 심심지 않게 생기는 가슴 아픈 일들을 보면 문득 우리의 삶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프른 잎을 자랑하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온 산은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든다. 그러다가 만산을 물들이던 단풍잎들은 하나 둘 떨어지고 떨어진 낙옆은 흩날리는 바람결에 이리 몰리고 저리 날리다가 결국은 썩어서 흙이 되고 만다.
이른 봄 파랗게 피어나는 새싹들은 얼마나 싱싱하고 보기 좋은가? 그리고 그 더운 여름날 나무 가득 매달려 진록색의 자태를 자랑하던 나뭇잎들의 모습은 또 얼마나 찬란한 모습이었던가?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영화롭던 시절은 지나가고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서 그들의 운명은 자기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생을 다하고 만다.
봄철에 나무에 잎이 나지 않으면 우리는 그 나무가 죽은 것으로 의심하게 된다. 그만큼 잎은 나무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동절기가 다가오면서 나무는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나뭇잎의 수분 공급을 끊는 일이다. 나무는 겨울동안 자기가 살기 위하여 단호하게 나뭇잎들을 죽여야 한다. 수분과 영양분 공급이 끊긴 나뭇잎은 빨갛게 질려서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붉게타는 단풍" 어쩌고 하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 얼마나 비정한 일인가?
언젠가 학원비를 주지 않는다고 자기 어머니의 목을 졸라 죽였다는 딸의 기사가 신문과 방송에 나왔을 때 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아프게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떻게 이런 비정(非情)한 세상이 되나?"라고 한탄을 하였다.
자기의 골프채를 좀더 좋은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쓰는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데 월세 돈을 못 내어 쫓겨나게 된 동생에게 마지못해 보태준 돈을 너무나 아까워 하는 우리의 인심은 또 얼마나 비정(非情)한 것인지?
이 세상은 비정해야 잘 사는가 보다. 마음 가득히 정을 품고서는 이 세상 살아가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속세를 등진 스님들과 수녀님들을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부모형제와 친구들을 버리고 갈 수 있는 냉정한 그 마음은 비정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무정하다고 해야 할까?
서울역 지하도를 지날 때 삶을 포기한 듯 아침부터 술이 취해 행패를 부리는 노숙자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저런 삶을 살고 있을까 비웃으며 지나가는 나는 따지고 보면 누구보다 비정한 사람이다.
내 손가락에 찔린 작은 가시의 아픔이, 손을 절단한 다른 사람의 아픔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남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는 이기적이고 비정한 나의 마음 때문이 아니겠는가?
2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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