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각자의 삶의 방향을 정하고 살고있다. 우리는 한세상을 살아가면서 각자의 삶의 방향에 정확한 의미를 두지 않을 경우 그의 삶은 무의미한 것이 되기가 쉽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시작과 끝이 존재를 한다. 우리 인간은 생명의 시작은 자신이 선택하지 하지 못하지만 그 끝은 스스로 결정을 할 수도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중에서 자기 생명의 마지막을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는 동물은 아마도 사람이 유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사람이 생각을 할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생은 탄생과 죽음의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데 그 주어진 생명의 시간은 우주생성의 역사에 비교하면 刹那의 순간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이 찰나의 순간을 살면서 그 짧은 순간을 또 줄이려고 하고 있다. 동물은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이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刹那라는 말의 의미는 눈 깜짝할 사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생각이 스치는 한 순간처럼 짧다는 뜻으로 염, 염념, 일념 등으로도 해석이 된다. 불교에서는 실체를 지니고 있는 듯이 보이는 이 세상의 존재물이 실제로는 한 찰나마다 생멸을 반복하고 있으므로 실체가 아님을 가리켜 찰나생멸 또는 찰나무상이라 한다.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난 동물이기 때문에 생과 사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러다보니 철학이라는 학문이 생기고 종교라는 영혼의 세계를 만들었다. 우리 인간들의 정신세계는 무한대다. 그러한 능력은 행일 수도 있고 불행일 수도 있다.
현존하는 종교는 각각 나름대로의 이론이 정립되어 있는데 모든 종교는 그 종교에 귀의하면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복신앙(祈福信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종교들은 절대적인 능력을 과시하는 과정에서 그 불합리함을 감추려다 보니 무리한 이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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