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5
4월말 칼봉산 산행 시에 칼봉산 능선 밑에서 금낭화의 엄청난 군락지를 보고 꽃이 필 무렵 다시 오자고 했던 약속이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벌써 5월 중순이다.
아무래도 꽃이 다 질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난다. 야생화에 초보자인 나는 조금 걱정이 되지만 표 작가는 큰 걱정을 하고 있다.
마음먹고 날을 잡아 출발을 약속했는데, 많으리라 예상했던 인원은 줄고 줄어 출발 당일에는 3명의 단출한 식구가 되었다.
아침 8시 15분 반포를 출발, 가평을 향하는 토요일의 경춘 가도는 아침시간인데도 예상외로 차가 많이 밀린다.
출발한지 두 시간이 넘은 10시 반에야 가평에 도착을 했고 비포장도로인 깊은 산속 경반리 분교까지 가는 데는 다시 30분이 더 걸렸다. 학생이 줄어 이제는 폐교가 된 경반리 분교는 MT신청을 받는다는 작은 안내판이 붙어 있지만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분교 옆으로 올라가는 산길은 지난번 4월 말 보다 녹음이 많이 욱어져 그 당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인데 입구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야생화는 금낭화를 보고자 하는 발걸음을 계속 더디게 한다.
고들빼기와 흰광대수염이 보이고 좀씀바귀도 나타난다. 엉겅퀴 꽃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볼 때마다 은근히 멋진 꽃이라는 느낌이 든다.
고들빼기

뽀리뱅이를 찍은 뒤 나중에 보니 초점이 맞지 않아 촬영에 실패를 했는데 자동 노출에 의존하는 사진촬영의 경우 그 성공여부는 카메라의 마음에 달렸다.
조금 올라가니 흰봄맞이꽃이 수줍은 듯 피어있고 고추나무꽃, 알록제비꽃 역시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그런데 꽃의 종류가 점점 많아질수록 내 머리는 뒤죽박죽이 된다.
이름을 물은 뒤에 메모지에 분명히 적었는데 이것이 저것인지 저것이 이것인지 헷갈려서 머리가 아프다 .
뒤늦게 고물사진기 하나가지고 꽃을 찍는다고 설쳐대는 내가 조금은 주책 같지만 아무려면 어떠냐, 그것도 사는 재미의 하나인데.
벌깨덩굴

이름도 이상하고 생긴 것도 이상한 벌깨덩굴은 처음에는 벌깨동굴이라고 듣고 혼자서 꽃모양이 동굴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구나 짐작한 뒤, 꽃모양을 열심히 관찰하면서 “맞아 꽃이 동굴처럼 생겼네! 라고 감탄 했는데 집에 와서 꽃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해 보니 동굴이 아니고 덩굴이다.
윤판나물은 잎도 시원하고 꽃도 시원하게 생겼는데 이름 또한 색다르다. 이름만 들어서는 옛날 벼슬이름인 판관 생각이 난다.
윤판나물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앞서간 두 친구가 사진기를 들이대고 나무 기둥에 붙어 있는 흰 꽃을 찍고 있다. 심상치 않아 무슨 꽃이냐고 물어 보니 이름이 “으아리” 라고 한다. 으아, 참 희한한 이름이다.
으아리

꽃 이름은 참으로 이상 것이 많다.
애기똥풀은 산과 들 언덕에서 요즈음 가장 많이 보는 꽃 중의 하나인데 이름을 붙인 사연 인즉 줄기를 잘라 보면 자른 부위에서 아기똥 같은 노란 액체가 나와서 작명을 그렇게 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매화말발돌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설명이 잘 안 된다.
애기똥풀

땅위 마른 나뭇잎 사이에 줄기가 쭉 올라와 커다란 잎이 두어 개 나오고 그 잎 밑에 포충식물처럼 주머니가 달린 꽃 같지 않은 꽃 천남성은 이름도 모양도 별나게 생겼다.
천남성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촬영에 열중인 두 사람은 점심 먹을 생각을 않는다.
쇠띠기 밭을 지난 뒤 밥 먹자고 아우성을 친후 간신히 점심 식사를 시작했는데 이제 본격적인 금낭화 군락이 시작 되는 듯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금낭화 천지다.
벌써 꽃이 핀 것도 있고, 아직 피지 않은 것도 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내가 깔고 앉은 풀도 꽃이 안 핀 금낭화다.
금낭화를 보면 화려하기 보다는 어딘가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는 듯 한 모습인데 꽃말은 비단주머니이고,금낭화의 다른 이름은 며느리주머니, 며늘취, 등모란, 덩굴모란 이라고도 한다.

신순애라는 시인은 금낭화를 이렇게 읊었다.
“두 송이 똑 따서
귀걸이에 걸어 보면
스무 살 내 모습이
다시 찾아 옴직한데
두려운 손길은 차마
머뭇거려 서 있네!
금낭화 군락

금낭화 촬영을 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많이 지났다. 인적 없는 산속에서 숲속을 뒤지고 다니며 꽃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들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본다면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하리라.다행이도 우리가 산에 들어온 뒤 지나가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