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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캐나다에서 눈속에 빠진 차를 꺼내는 소동”

by 남상태 2025. 1. 30.

캐나다 밴프 원정대의 일정 중에 제스퍼 오로라 구경이 있다. 오로라를 보기는 쉽지가 않다고 하여 기대는 안 했는데 마침 내일 밤에, 숙소가 있는 캔모어에서 200km 떨어진 제스퍼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정보를 받고 우리 일행은 차 두 대로 당일 오후에 출발을 했다.

 

가는 중에 날씨가 맑았다 흐렸다 하여 은근히 걱정을 하며 제스퍼에 도착한 뒤 이곳저곳 구경을 하며 날이 저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날씨는 점차 흐려지며 해가 지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눈이 내린다는 얘기는 오로라를 보러 오라는 얘기가 아니고 집으로 가라는 얘기다.

 

길도 미끄러운데 500리 길을 달려온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못 듣고 눈발 날리는 어둠 속을 달려 숙소로 오는 수밖에 없으니 한심한 생각이 든다. 우리의 앞차는 카레이서가 운전을 하고 있어, 우리가 쫓아가기에는 힘이 버겁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저런 한담을 하며 가기를 한 시간, 집 하나 없고, 오가는 차도 없는데 가로등 하나 없는 밤 8시가 넘은 시간의 자동차 도로는 달리는 자동차 라이트 불빛 하나만으로 주변 환경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차가 캔모어 숙소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중, 운전석 뒤에 앉았던 나는 갑자기 차가 멈칫하면서 눈가루가 차 앞 유리를 하얗게 덮어버리는 것을 보고 “아! 사고구나”라는 것을 직감하였다, 차는 순간적으로 눈 속에 푹 박히며 그 자리에 정지를 한다.

 

우리 차는 급한 코너 길에서 미끄러지면서 코너링을 하지 못하고 직진하면서 길가에 쌓인 눈더미 속에 박혀 버린 것이다. 운전기사의 순간적인 판단과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잘 못했으면 길 아래로 추락할 뻔했다.

 

돌발상황에 잠시 차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던 우리는 차 밖으로 나가려는데 평지가 아닌 눈더미에 올라앉은 차 문을 열고 내리려니 몸 가누기가 힘이 든다.

 

밖의 상황은 더 한심하다. 간신히 차에서 내리니 기다렸다는 듯이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뺨따귀를 때리는데 눈가루가 귓속으로 들어간다.

86 동계 에베레스트 원정 때에도 경험하지 못한 눈 뺨따귀를 맞으니 80이 넘어서 이게 무슨 일인지 어안이 벙벙하다.

“무엄한지고, 감히 노인네 뺨을 때리다니”

 

차가 눈에 묻혔으니, 차를 움직이려면 눈을 치워야 한다. 그런데 작은 삽 하나 없이 어둠 속에서 맨손으로 눈을 퍼내려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데 한국에서 열심히 준비한 헤드램프는 숙소에 고이 모셔 놓고 와서 핸드폰 불빛으로 상황을 파악한다.

 

시간을 보니 밤 9시 반이다. 이역만리 캐나다 제스퍼 국립공원 변두리의 눈보라가 치는 인적 없는 자동차 도로에서 핸드폰도 안 터져 구조 연락도 못 하고 언 손을 호호 불며 한 시간째 눈을 퍼내고 있으니 아무래도 오로라 신에게 대단한 불경죄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눈보라 속에 마침, 달려오는 자동차의 불빛이 보인다. 반가움에 두 손을 흔들며 구조 요정을 하니 젊은 부부가 차에서 내려 무슨 일인가 확인한 뒤 이곳에서는 흔한 일인 듯 차에서 끈을 꺼내어 차에다 묶은 뒤 차를 눈에서 끌어내려고 하는데 그 정도로는 우리 차는 눈에서 나오려는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보아하니 장비가 미약해 어림도 없다.

그 사람들은 이 지역은 한 시간 정도 가야 전화가 가능하고 우리나라 119 같은 시스템은 갖추어져 있지 않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전화가 된다 해도 오밤중에 구조차가 오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세계의 유명 관광지인 캐나다 벤프국립공원과 제스퍼국립공원 간의 도로를 달리는데 네비도, 전화도 구조요청도 안 된다고 하니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구난 요청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두 사람이 먼저 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데 마침 트럭 한 대가 온다. 그 차는 무슨 작업을 하는 차인 듯 기사가 내리더니 여러 가지 장비를 내려서 차를 끌어내려고 시도하는데 구난하는 요령이 없는 듯 보기에는 요란한데 효과가 없다.

마침, 또 한 대의 트럭이 우리를 보더니 정차를 하는데 두 트럭 운전사가 의논을 하더니 눈에서 우리 차를 끌어내려는 시도를 한다. 그런데 옆에서 보니 두 사람이 비슷한 실력이다.

 

그들은 우리 차의 앞에 체인을 묶을 곳이 안 보이자, 차 앞바퀴의 휠에다 줄을 걸고 힘으로 끌어내려고 한다. 바퀴의 휠에다 줄을 묶으니 차바퀴는 구르지를 못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억지로 끌려오는데 차 어딘가는 결딴나게 생겼다. 그러면 눈 속에서 차를 꺼내도 차를 움직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차를 포기하고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트럭 운전사에게 캔모어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추운 겨울 오밤중에 가던 길을 멈추고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 이분들은 참으로 친절도 하다.

 

우리는 밤 12시에 현장을 탈출, 3시에 켄모어 숙소에 도착했는데 연락이 안 된 우리 앞 팀은 우리가 오지 않자 사고가 난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다시 사고 현장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전화 연락이 안 되니 참으로 답답하다.

 

나중에 들으니, 이곳에서는 사고가 나면 차를 꺼낼 생각을 하지 말고 차를 그대로 둔 채 전화가 되는 도시로 나와서 렌트회사에 신고하면 다 알아서 처리해 준다고 한다.

 

날이 밝은 뒤 렌트회사에 가서 신고를 하니 우리 회원 두 사람과 같이 구인하러 현장으로 가고 사고 난 차 대신 다른 차를 내주어 우리는 일정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고생은 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고 더구나 만 80세 이상은 여행자보험도 안 들어준다고 해서 보험도 못 들고 왔는 큰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