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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

by 남상태 2023. 8. 4.
2005-07-19 15:27:24  (이글루스)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權限 중에 가장 큰 權限은 무엇일까?

옛날에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 중에서 반장을 지명한 일이 있었다. 이때 선생님의 권한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회에 나온 뒤에는 회사 사장님이 사원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다른 사원들 보다 먼저 진급을 시킬 때  사장님 권한은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권한이란 公的으로 행사할 수 있는 職權의 범위를 말한다. 쉽게 얘기하면 공식적으로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옛날 로마시대에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이 생사를 걸고 싸움을 하다가 한사람이 상대편을 쓰러뜨리면 칼을 그의 목에다 겨누면서 네로황제를 바라본다.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를 황제에게 묻는 것이다. 이때 황제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하면 그 사람은 죽는 것이고 위로하면 산다. 생과 사의 갈림길은 순전히 네로황제의 마음에 달렸다.

이때 네로황제의 생사여탈권은 그 무엇보다도 대단한 권한을 발휘 한다.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한 보다 더 큰 권한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의 생명에 비할 것은 못되지만 생명이 있는 이세상의 모든 동식물들을 내 맘대로 죽이고 살리는 일 또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불교에서는 이세상의 모든 생명이 있는 물체들을 똑같이 귀하게 여긴다고 하지 않는가?

이번 장호원 복숭아 농장에서 며칠간 일을 도와주는 동안,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였다.  보기에 따라서는 별일이 아닌 것 같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고민을 하였다는 얘기다.

 

복숭아 농장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다보면 힘이 들고 땀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때 더 짜증나게 하는 일은 극성맞은 파리들이다. 시내에서는 파리들이 얼굴에 앉았다가도 머리를 흔들면 금방 도망을 가는데 이곳의 파리들은 머리를 흔드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몇 번을 흔들어도 전혀 반응이 없다. 나중에는 화가 나서 손으로 파리가 앉은 부분을 세게 후려치면 파리는 날아가고 맞은 내 뺨만 얼얼할 뿐이다. 이런 일이 하루 종일 계속되면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나도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지게 된다.

 

일을 끝내고 나혼자 거주하는 막사로 돌아가 보면 막사안 복도에는 파리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집안을 환기 시킨다고 문을 열어 놓고 나갔다가 돌아와서는 정말로 기겁을 했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복도에 있는 낡은 탁자위에 엄청난 파리들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앉아 있다. 수 백마리 아니 수 천마리의 파리들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밀집해서 앉아 있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상상하지 못한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머리털이 비쭉 서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파리약을 가지고 와서 탁자위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리채를 가지고 현란한 솜씨로 파리 사냥을 시작했다. 파리약을 먹고 비실거리는 파리들은 나의 공격 범위에서 쉽게 벗어 날 수가 없다.

정신없이 파리를 잡다보니 갑자기 나에게서 살기가 돋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백 마리를 한 번에 屠戮을 하다 보니 이 파리들이 만약 비둘기 정도의 큰 짐승들이라면 이렇게 무자비하게 죽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나는 생사여탈권의 대단한 권한을 주저없이 행사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마음을 고쳐먹고 파리채를 거둔다면 나머지 파리들은 나머지 그들의 생을 보낼 수가 있다.

 

복숭아나무의 봉지 씌우는 작업은 단순히 복숭아에 봉지를 씌우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복숭아 나뭇가지에는 복숭아가 여러 개가 달렸는데 어느 가지는 6~7개가 달린 것이 있고 어떤 가지는 서너 개가 달린 것도 있다. 봉지 씌우는 사람은 나뭇가지의 상태를 보고 한 가지에 3개 이상 달린 것은 3개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솎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상품가치가 높은 과일이 생산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나의 고민은 시작이 된다. 5개의 복숭아 중에 어떤 놈을 따서 버려야 할 것인가 라는 판단은 쉬운 것 같지만 상당히 어려운 결단이 필요하다.

똑같이 잘생긴 복숭아 5개중에 어느 놈을 먼저 따야 하는가 라는 결정을 하기 전에 생사여탈권이라는 막중한 권한을 가진 나는 네로황제 생각을 많이 했다.

 

네로황제는 참으로 독한 사람이다. 아니 네로황제 뿐인가, 이세상의 수많은 전쟁터에서 짐승이 아닌 사람을 상대로, 몇 백 마리의 파리가 아닌 수십, 수백만 명의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그동안의 전쟁터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왔다.

아니 오히려 전쟁터에서는 적군을 많이 죽이면 훈장도 타지 않는가? 자기 동족을 많이 죽이면 훈장을 타는 동물은 이세상에 아마도 사람 들 밖에 없으리라.

 

더운 여름철, 복숭아 농장에서 일하다가 나는 아마도 더위를 먹었나 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사여탈권이라는 말은 복숭아나 파리 죽이는 일에 써 먹을 말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