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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일기

경비원의 하루 (10-8)

by 남상태 2023. 6. 8.

무슨 일이던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처음 시작할 때 잘 못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도 계속 잘못하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 경비원 생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일의 두서가 없어 어렵고 힘이 들지만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처음보다는 훨씬 여유가 생기게 마련이다.


경비원은 주민들과 가장 많이 접하고 직접 상대를 하기 때문에 말썽과 시비의 소지가 많은 위치에 있어 관리사무소에서는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계속 주지를 시킨다. 그렇지만 서로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관계로 항상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남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는 평상시와 다른 모습으로 행동한다.

 

전에 후배 교수가 근무하는 대학교에 갔다가 마침 점심시간이라  후배와 같이 식사를 하러 학교 식당에 간적이 있다. 그때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여학생들을 가르키며 우리에게 고자질 하듯 하던말이  생각난다. 

“저 여자 애들이요, 저희들끼리 와서 먹을 때는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난리를 치던 것들이 남학생들과 같이 와서 먹을 때는 음식을 반도 안 먹고 남겨요”

라고 기가 막히다는 듯이 이야기 하던 생각이 나는데 남한테 잘 보이기 위한 행동과 평상시의 행동이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아파트는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분리수거를 한다. 음식물찌꺼기를 따로 수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박스와, 책과 신문지, 그리고 파지를 구분하고 맥주병, 소주병, 일반 잡병과 깡통 등을 나누어 분리수거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구분을 해서 버리는데 어떤 사람들은 전혀 이런 일들을 무시해 버린다. 사람이 없을 경우 자기 편한 대로 아무데나 집어던지고 가는가 하면 심지어는 깨진 병들을 신문지 버리는 곳에 같이 버리는 바람에 정리를 하다가 잘못하면 손을 크게 다칠 번해서 놀래기도한다. 심한 경우는 음식물 쓰레기를 신문지 버리는 곳에 같이 버리는 사람들도 있어 정신적인 이상자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다. 모두 아무도 안 볼 때 하는 행동들이다.

 

폐기물들은 폐기물 딱지를 사서 붙여야만 배출이 되는데 그 돈이 아까워 몰래 버리고 가는 바람에 경비원이 개인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난감한 경우도 생긴다.

며칠 전 일이다. 어떤 40대 부인이 철사로 만든 옷걸이 수십 개를 가지고 오더니 바닥에다 던지면서 “이것 좀 버리세요. 하고 휭 하고 가버린다.

옆에 있던 다른 아주머니는 기가 막힌 듯 그 여자를 쳐다보다가  나를 보길래 우리는 같이 웃고 말았는데 이런 유의 사람들이 아직도 생각보다 많다.

 

경비원을 하려면 아니꼽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참아야한다고 쉽게 얘기들을 하는데 막상 그 일이 자기의 경우가 되면 그런 얘기를 할 수가 없다.


내가 근무하는 아파트 근처에는 초등학교가 있어 등교 시간이면 아이들이 경비 초소 앞길을 메우며 지나가고 또 경비초소 옆에는 놀이터도 있어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자주 보게된다.

그래서 전에는 잘 모르던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엿볼 수가 있는데 옛날 우리들이 자랄 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과 젊은 부모들의 자녀에 대하는 방법을 보며 놀래곤 한다.

 

요즈음 아이들은 어른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들은 인사도 잘하고 싹싹하긴 하지만 심심치 않게 초등학생이 야단치는 선생님을 구타했다는 보도가 나는 세상이니 하찮은 경비원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어른을 전혀 어려워하지 않고 공중질서나 주위에 대한 배려등은 전혀 생각지도 않는 아이들, 길 건너가면서 차가 오던지 말던지 전화를 하면서 천천히 길을 건너가는 아이들은 흔한 일이고 잘못을 나무라면 초소에다 무언가를 던지고 도망가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중학생 정도되면 아예 시비를 걸지 말라고 경비원 고참들은 조언을 한다.


하굣길에는 많은 아이들이 경비실 앞으로 지나가는데. 용돈이 넉넉한 탓인지 집에 가는 아이들은 대부분 손에 무언가 먹을 것을 들고 간다. 그럼데 그 먹거리의 포장지를 전혀 거리낌 없이 아무 곳에나 버리는 아이들 때문에 지나가는 통로는 단박에 쓰레기장이 되고 만다.

그래서 “이거 누가 버렸어?” 하면 한결같이 “나는 안 버렸어요! 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바람에 큰소리친 나만 바보된다.

 

이런 아이들이 크면 과연 남을 배려하는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것인가 걱정이 된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 아이들은 자기들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경비실에 와서 당당히 요구를 하는 당돌함이다.

 

내가 할 일은 외면하고 자기가 주장할 것은 확실하게 주장하는 요즈음 아이들, 하긴 벌써 우리 주위의 젊은이들 간에는 이런 풍조가 자연스러운 일이 되고 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변화를  할 것인가 자못 걱정이 된다.


어느 날 아파트 건물 내부를 청소하는 아줌마가 당황스런 모습으로 오더니 지하실에 가보자고 한다. 왼 일인가 하고 지하실에 내려가 보니 평상시 출입문이 잠겨있어 외부인은 출입이 불가능한 지하실이 온통 어질러있고 스티로폼도 바닥에 깔려있는 것을 보니 누군가가 왔다간 흔적이 분명하다.

아마도 아이들이 몰래 들어와서 놀다간 흔적 같아 보인다. 이런 경우는 상당히 위험하다. 사람들이 없는 지하실 구석에서  아이들이 무슨 짓을 하고 노는지 모르고 만약 추운날씨에 불이라도 피우면서 놀다보면 대형 사고가 날수도 있다. 그래서 평상시 옥상과 지하는 꼭 잠가 놓고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의 출입을 제한한다.

 

다음날 지하를 유심히 살피는 중 드디어 아이들이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5, 6학년 아이들 7~8명이 몰려있는데 이 아이들에게 왜 잠궈 놓은 문을 열고 들어왔는가를 물어보니  저희들은 죄가 없고 다른 형들이 문을 열어 주어서 들어왔다고 잔황하게 변명을 한다.

그래서 집 호수를 물어보고는 다시는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 뒤에 보냈다. 그런데 얼마뒤에  한 아이 어머니 한 테서 경비실로 전화가 왔다. 아이한테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애를 그렇게 야단을 치면 되느냐고 항의를 한다. 자기 아이가  출입이 금지된 지하에  잠겨있는 문을 따고 여러명이 몰려와 무슨 일을 했는가 하는 것은 상관이 없고 자기 자식 얘기만 듣고 강력하게 항의를 한다.

이렇게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이 일어난다. 그래서 경비원은 피곤하다.

 

우리가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 그런데 그 중에는 일이 어렵고 힘들어서 받는 스트레스 보다는 사람과의 관계로 받는 스트레스가 더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경비원 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가을엔 낙엽이 떨어진다. 이런 당연한 일이 나에게 절실한 일로 다가 올 줄은 미처 몰랐다. 아파트에는 나무들이 많다. 나무들이 많으면 낙엽도 많이 떨어지고 한 없이 떨어지는 낙엽은 경비원들의 손에 의해 전부 치워져야 한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고 바람이 불면 낙엽은 정말 정신없이 떨어진다.

마치 눈이 오듯 온통 하늘을 가리며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어린 아이들은 신이 나서 두 팔을 벌리며 뛰어다닌다. 내가 봐도 장관이다. 그러나 치우고 또 치우고 쓸고 또 쓸어야하는 낙엽은 결코 낭만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하루 종일 낙엽을 쓸다가 지쳐서 쉬고 있는데 동 대표라는 여자가 와서 한마디 한다.

 

“아저씨 수고 하시는데 저쪽엔 낙엽이 너무 많이 몰려있어 보기 싫어요, 좀 치워 주세요“ 동대표의 명령은 경비원에게는 절대적이다. 우리 동 대표는 특히 까칠한 성격으로 소문이 나있어 이미 부딪치지 말라는 조언을 받은 처지라 군말 없이 일어나 또다시 빗자루를 들었다.

 

바람이 불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생각이 난다. 그런데 떨어지는 낙엽은 수도 없이 많은데 가지에 붙어있던 나뭇잎이 가지에서  막 분리되어 떨어지는 순간은 보지 못한것 같다. 그래서 주의 깊게 살폈지만 한참을 지나는 동안에도  분리되는 순간은 보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침내 가지에 붙어있던 나뭇잎이 툭 떨어지는 모습이 보여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나뭇잎이 가지에 붙어있는 것과 떨어지는 차이는 삶과 죽음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사람이 죽는 것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병원에서 운명을 하던 후배의 마지막 모습도 그랬다. 방금전까지 움직이던 침대 위 계기판의 파동이 그 친구의 숨이 멈춰지면서 서서히 같이 꺼지던 모습과 낙엽이 가지에서 분리되어 떨어지는 모습이  같이 오버랩 되며 다가온다.


아파트 단지 내의 한적한 구석 의자에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있는 모습이 며칠 전 부터  자주 보인다. 
물위에 기름 처럼  아파트 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 그 할아버지의 행색과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아 무슨 사연이 있는가 궁금하지만 미루어 생각만 할 뿐 물어보기가 어렵다.

나는 슬며시 나 역시 남이 보기에 경비원 생활에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처럼  보이지나 않는지 걱정이 된다.

 

그러다 보니 경비원 생활은 몸도 피곤하지만 생각도 많아지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