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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와의 이별 (4)

by 남상태 2023. 5. 20.
하늘이와 인연을 맺은지 일 년. 나는 인생의 말년을 하늘이와 같이 하리라 생각을 했었는데 세상사 내 뜻대로 되어주지 않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이런 저런 일로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갑자기 집을 이사 하게 되었다.
먼저 살던 집은 사람이 살기는 조금 불편해도 하늘이가 거처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어 나는 행복했는데 새로 이사 가는 집이 3층 아파트라 사람이 살기는 편해도 하늘이가 있을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털북숭이 하늘이를 집안에서 기르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어림없는 일이고 옥상을 생각했지만 누구 욕먹을 있냐고 집사람이 펄펄 뛴다.
생각다 못해 1층 주차장 구석에 개집을 옮겨 놓으려니 주위 사람들로부터 단박에 시비가 들어온다.
“여기에서 개를 기르시려구요?”
“아닙니다. 갑자기 개를 보낼 곳이 없어 잠시......”

이사 첫날 낮선 환경에 밤에 개가 짖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주차장 구석에서 하늘이는 아침 출근 하기전과 퇴근 후 늦은 밤 잠시 나를 만나는 일 이외에는 하루 종일 불안한 상태로 묶여 있으니 위축이 되어서인지 내가 가도 한참을 경계를 하다가 뒤늦게 아는 체를 한다.
 
사람이나 개나 정말로 못할 짓이다. 아무래도 이 녀석을 어디엔가 보내야 할 텐데 보낼 곳도 마땅치 않지만 가는 곳이 이곳보다 못하거나 인정 없는 주인을 만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늘이를 데리고 어디 시골로 가버려?”
그렇지만 시골이라고 내가 갈수 있는 곳이 있을 리 만무니 생각과 고민으로 끝날 뿐이다. 고민 고민 하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상의를 하는 용덕이 형님에게 전화를 했다.
 
“형님, 내 사정이 여차저차 한데 어떻게 하면 좋지요?”
다른 사람 같으면
“야! 너 참 별걱정을 다한다. 보낼 곳 없으면 어디 갔다 버려”
 
그렇지만 우리의 용덕 형님은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며 생각좀 해보자고 한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단박에 전화가 온다.
 
형님 말씀이
“야, 우리 먼저 갔던 원주 그 농장으로 보내면 어떠냐? 농장 주인도 좋다고 하니 개로서도 그보다 좋은 곳이 없을 것 같다”
 
지난번 안암산우회 40주년 산제 때 가서 하룻밤 자고 온 곳이니 그곳 사정이야 설명을 들으나 마나다.
그런데 마침 우리 하늘이를 분양해준 개아범 홍식 아우한테서 전화가 온다.
 
“형님, 고촌 농장에다가 공장을 지어야 해서 개들을 전부 다른 곳으로 보내야하는데 어디 보낼 곳이 없을 까요?”
홍식이는 나보다 더 심각하다.
삽사리 두 마리, 풍산개 한 마리, 진돗개 두 마리, 모두 다섯 마리중 진돗개는 벌써 다른 곳으로 보냈는데 나머지 개들 때문에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중 풍산개와 우리 하늘이를 원주 농장으로 보내기로 하고 날짜를 잡았다. 어차피 이별을 하려면 빨리 하는 것이 났다.
 
이틀 후 개들을 데리고 원주를 가기로 했는데 큰개 두 마리와 개집까지 싣고 장거리를 간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내 승합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용덕이 형님, 홍식이, 그리고 수원에 거주 하는 농장주등 네 명이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저녁때 하늘이를 보려니 가슴이 저려온다. 이제 이틀 후면 이별인데 맑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하늘이를 보고 있으려니 더욱 기가 막힌다.
“하늘아! 내가 너를 어떻게 보내야 하냐?”
 
하늘이는 전에는 잘 먹던 밥을 이사 온 뒤엔 잘 먹지도 않는다. 나를 보더니 그제야 조금씩 먹다가 맥없이 앉아있는 나의 기색이 이상한지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쪼그리고 앉는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었더니 갑자기 으르렁거리며 위협을 준다.
나는 깜짝 놀라서 “이 녀석이 미쳤나?” 하는 생각으로 야단을 치려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개를 끌고 이별의 산책을 하기로 했다. 멋모르는 하늘이는 외출이 너무나 좋은지 난리 법석이다.
“이별의 산책”
나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데 하늘이는 그저 좋기만 한 모양이다.
 
하늘이가 나에게 한행동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이 녀석이 나와의 정을 떼려고 그런 행동을 했나 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너무 섭섭하여 잠이 잘 안 온다.
 
11월 22일, 회사도 결근한 채 하늘이를 데리고 홍식이가 기다리고 있는 김포의 고촌으로 갔다. 차를 타고 가며 하늘이는 버릇대로 창밖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다. 저는 아마도 산보를 가는 줄 아는 모양이다.
 
고촌에 도착하니 풍산이가 멋도 모르고 사납게 짖어댄다. 차 뒷문을 열고 개집과 풍산이를 태우려 하니 낌새가 이상한지 영 타려고 하지를 않는다.
신사동에서 기다리고 있는 용덕이 형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풍산이가 심하게 멀미를 한다.
용덕이 형님을 만난 뒤 다시 수원 톨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는 농장 주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어제의 하늘이 행동을 얘기하니 홍식이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며칠 전 아는 선배에게 풍산이를 데리고 가라고해 상견례를 하러 왔었는데 아파트에서 기를 생각을 하고 있어 결과는 무산 됐지만 이 개가 저를 데리고 가려는 것을 알았는지 나중에 홍식이에게 으르렁거리고 눈물까지 흘리더라는 얘기를 듣고는 나 역시 잘 믿기지가 않는다.

 
신림 톨게이트 까지 가는 동안 풍산이는 차멀미를 하느라고 똥오줌을 싸면서 정신을 못 차리는데 하늘이는 앞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낯선 주위 경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운전을 하며 가끔 하늘이를 돌아보려니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 놈의 정 때문에”
 
신림 톨게이트를 지나 농장이 있는 산길로 접어드니 이제 이별의 순간은 점차 가까워진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차멀미를 하느라고 크로키 가된 풍산이는 차에서 내려놓으니 그제야 힘이 좀 나는 모양이다. 이곳 농장에서 기르던 변견 두 마리가 텃세를 하느라고 그러는지 정신없이 짖어 대는데 누군가 한마디 한다.
 
“삽사리와 풍산개가 왔으니 너희들 이제는 별 볼일 없다”
아무려나 그들은 그런 내막을 알기나 할런가?



먼저 제법 넓은 염소 우리 안에 두 마리를 데리고 들어간 뒤 하늘이를 풀러 놓으니 이곳저곳 다니며 냄새를 맡느라고 정신이 없다. 분위기도 바꿀 겸 하늘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더니 신이 나서 내가 멀리 가지 않는가를 살피며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이런 곳에서 하늘이를 데리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아예 이곳에서 눌러 앉아?
오물로 범벅이 된 차를 물로 깨끗이 씻어 낸 뒤 우리는 마침내 떠나야 하는데 아무래도 주저 된다. 풍산이는 염소 우리 안에 매어 놓고 하늘이는 마당가에 끈을 길게 하여 개집 옆에 묶어 놓으니 이제 떠날 준비는 다 된 것 같다.



하늘이를 쓰다듬어준 뒤 차 쪽으로 걸어가면서 뒤 돌아 보니 하늘이는 나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서있다.
용덕이 형님이 놀린다.
“너 잘하면 울겠다!”
“형님 그러지 마세요. 나 정말 눈물 나요!”



돌아오는 길에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던 하늘이의 모습이 영 지워 지지 않는다.
“ 우~~ 하늘아, 하늘아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