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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의 견생유전 (8)
남상태
2023. 5. 21. 06:43

우리나라에는 대표적인 토종개들이 몇 종이 있다.
진돗개, 삽사리, 그리고 근래에 북한으로부터 들여온 풍산개 등이 대표적인 품종이다.
진돗개는 일찍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종개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삽살개는 일반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하늘이를 데리고 길을 가다보면 개의 특이한 모습에 모두들 한 번씩 더 쳐다보고 그중에 몇 사람은 “이 개가 삽살개 인가요?” 라고 아는 척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개가 무슨 개 예요?” 라고 신기한 듯 물어 본다.
털북숭이의 외형에다 눈까지 털로 뒤 덮여 보는 사람들은 답답한지 한마디씩 한다.
"야! 저놈 참 답답하겠다. 앞이 안보여 가다가 부딪치겠네."
하늘이가 대답한다.
"별걱정 다 하시네, 니나 조심 하세요"
각 나라의 토종개들은 전부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고 그 특색을 살려 우량 품종을 길러내기 위하여 많은 노력들을 하는데 군견으로 명성을 떨치는 세퍼트 같은 경우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명견이다.
일반적으로 토종개들은 그 나라의 국민성을 많이 닮는다고 한다. 서양개들은 서양 사람들의 품성을 닮아서 그런지 무리 생활을 할 때 상당히 민주 적이다. 여러 마리가 집단을 이룰 때 싸움을 해서 일단 서열이 정해지면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그 순위가 그대로 유지 되는데 우리나라의 토종개들은 그것이 잘 안 되는 모양이다.
풍산개, 진돗개. 삽사리를 같이 기른 홍식이의 설명에 의하면 진돗개와 풍산개는 싸움이 붙으면 몇 시간이고 끊임 없이 싸우다가 한 놈이 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음 날 다시 싸움을 해서 순위가 다시 바뀌고, 그 다음에 또 싸우고 하여 한번 진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니 우리나라 국민성에 그런 면이 있었는지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우리가 뽑은 대통령에 대하여 한번도 국가의 원수로서 인정하고 존경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 자신이 뽑은 대통령이지만 어떻게 하든지 단점을 찾아내고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얼마나 난리들을 쳐 댔던가?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국민성과 토종개 들의 성격이 흡사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닌지?
세 종류의 개 중에 진돗개와 풍산개는 싸움 승률 순위가 왔다 갔다 하는데 그중 삽사리는 사람한테는 순한데 다른 개들과의 싸움에는 사나워서 모두를 제압한다고 한다.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삽사리는 통뼈 체질로 순발력이 좋고 힘이 좋으며 발톱이 매 발톱 같아서 앞발이 무기 역할을 충분히 할 정도다.
듣기로는 세 종류 다 머리가 영리한 편이고 주인에 대한 복종심이 강해서 성견이 된 뒤에 주인을 바꾸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진돗개의 경우 머리가 영리해서 군견으로 활용해도 되나 정들었던 담당 사병이 제대를 하면 다음 담당 사병의 말을 잘 안 들어 군견으로는 불합격이라고 한다.
개들도 사람과 같아 각 개체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어 같은 종이라도 우열의 차이가 있는 법이다.
전에 친구가 시골에서 진돗개를 기르다가 멀리 사는 친척에게 개를 보낸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이개가 몇 달 만에 바짝 마른 몰골로 다시 찾아 왔다고 한다.
거리상으로 몇 백리나 되는데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친척 집에 알아보니 개가 어느 날 묶인 줄을 끊고 달아났는데 어떻게 그곳 까지 갔는가. 신기해하고 놀라워하던 일을 얘기한 적이 있다.
그 바람에 할 수 없이 그 녀석을 집에서 다시 길렀다는 얘기를 들으며 나는 감동을 먹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집에서 개를 여러 번 길렀다. 집에서 기르던 개들이 어느날 밖에 나가서 안돌아 오면 너무나 섭섭해 온 동네를 찾아 헤매던 기억이 나는데 품종이 시원치 않은 놈들이라 그런지 영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아 답답해하던 기억이 나서 돌아온 진돗개 얘기가 실감이 안 났었다.
요즈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대기업 비리 폭로 사건이 있다. 그런데 그 사건의 중심에 있는 전직 임원을 TV에서 볼 때마다 나는 하늘이와 비교를 하게 된다.
하늘이는 내가 저를 버렸는데도 일구월심 옛 주인을 생각 하고 2년이 넘도록 새 주인을 따르지 않으며 고생을 자초하고 있는데, 사람이 그것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한을 가슴에 품고 옛 주인을 악착같이 물고 흔들어대고 있으니 어찌 개보다 낫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늘이는 태어난 뒤 3년 동안에 거처를 이번까지 다섯 번이나 바꾸었다. 어찌 보면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라고 하겠는데 그렇게 된 데는 나의 책임이 절대적으로 크다.
하늘이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기를 바라는 동막의 홍식이 농장에 하늘이를 데려다 놓은지 일주일 만에 나는 집사람과 같이 하늘이를 보러 갔다.
하늘이는 웬일로 이렇게 옛 주인을 자주 볼 수 있나 하고 반색을 한다.
하늘이와 헤어진 지 2년이 넘는 집사람은 하늘이가 과연 알아볼 것인가 궁금해 하며 옆에 가서 조심스럽게 "하늘아" 하고 불러본다.
낯선 사람이 가까이 다가 와서 이름을 부르니 처음에는 고개를 홱 돌리며 외면을 하던 하늘이는 무언가 이상한지 다시 돌아보다가는 그제야 집사람을 알아보고 반가워서 펄펄 뛰어 오른다.
사실 집사람은 개가 크고 털이 많아 냄새 난다고 하늘이가 가까이 오는 것을 그리 반겨하지 않았는데 옛 주인을 잊지 않고 2년 만에 보았는데도 이토록 반가워하니 집사람 역시 감동을 한다.
인생 말년에 하늘이와 만났다가 불과 일 년 만에 헤어진 뒤에 나는 이어지지 못할 인연인줄 알면서도 끝내 그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아직까지도 이렇게 허우적거리고 있다.
인연은 꼭 사람과의 사이에만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하늘이는 2005년 4월 5일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 후 어미젖을 떼면서 부천 교회의 목사님 댁에 처음 새 둥지를 정했다.
그러나 팔자가 기박한 하늘이는 6개월 뒤 그 목사님이 러시아로 가야 하는 바람에 다시 처음 태어난 홍식이 집으로 돌아 가야할 운명이 되었는데 그런 이유로 나와의 기구한 인연이 시작되면서 하늘이의 견생유전도 시작 되었다.
개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던 나는 6개월 된 개라고 하여 털 많은 조그만 강아지 인줄 알았는데 데리러 가보니 등치는 산만하고 짖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아 깜짝 놀라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잘 따르지도 않고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으르렁 거리며 가까이 하는 것을 허락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나의 지극정성에 감복을 하였는지 어느 순간 나를 따르기 시작한다. 그 기간이 아마도 한 6, 7개월은 걸린 것 같다.
1년 정도 지난 뒤 이제 막 하늘이 와의 정이 깊어지려는 순간 우리 집 역시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었다. 마당이 없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다 보니 하늘이가 있을 자리가 없다.
이별의 슬픔을 안은 채 고르고 골라 하늘이가 살기에 좋으리라 생각한 원주의 신림 산기슭 농장에 하늘이를 맡겼는데 결과는 예상 밖으로 몇 달이 되도록 적응을 못한다.
주위 사람을 심하게 경계를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밥 주는 사람까지 물어대니 어찌 주인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다른 개들은 데려다 놓은 지 며칠만 지나면 벌서 꼬리를 치는데 몇 달이 되도록 저의 집에서 잘 나오지도 않고 사람들을 멀리 하니 아무래도 얼마 있으면 다가올 여름철을 넘기기가 힘든 상황이다.
고민 끝에 다시 옮긴 거처가 고대 농장, 먼저 있던 곳 보다 사람도 적고 한적하여 이제는 새 주인에게 정을 붙이겠지 하고 일 년이 지나도록 왕래를 삼갔는데 일 년 만에 들리는 소식은 또다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늘이는 여전히 새 주인을 멀리하며 몸에 손도 못 대게 하는 바람에 엉킨 털이 엉망이라 보기가 심히 민망할 지경이라고 하니 그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1년 만에 하늘이는 또다시 짐을 쌀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그동안 하늘이를 돌봐준 주인에게 얼마나 머리를 조아려야 했던가?
나는 생각한다. "인연" 그것도 "전생의 인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나도 하늘이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하늘아 이제는 제발 새 주인에게 정 붙이고 나를 잊어주면 안되겠니?"
그런데 홍식이 한 테서 전화가 온다.
" 형! 하늘이 에게 광견병 주사를 놓아야 하는데 이놈이 허락을 안 해요, 빨리 와요"
다음 일요일에는 아무래도 또 다시 동막엘 가야 할 모양이다.
"아! 이 끈질긴 하늘이와의 인연은 죽어서나 끝날 모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