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와의 이별(3-3)
고대안암산우회와의 산행중에 용덕형님, 나부장과 애기를 하는중에 원주 신림농장에 데려다 놓은 하늘이 얘기가 나왔다. 하늘이가 아직도 새집에 대한 적응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고대 덕소농장장을 지낸 나 부장이 그러면 가까운 고대덕소농장에 데려다 놓으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말한다. 거리가 가까우니 자주 가 볼 수도 있고 축산부의 젊은 부부가 동물들을 좋아하니 하늘이에게는 좋은 조건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한번 주었으면 이제는 그 집 개인데 어떻게 내 맘대로 다시 달라고 할 수가 있냐고 하니 신림농장 쪽은 양해를 받을 테니 걱정을 말라고 한다. 신림농장의 주인도 안암산우회의 회원으로 서로 무관한 사이라 부담없이 얘기가 가능한 모양이다.
고대암암산우회는 다른 대학과 달리 회원구성이 총장에서부터 학장, 교수는 물론 교직원은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할 수가 있어 안암산우회 회원이 되면 고대 내의 왼만한 일 처리는 많은 편의를 볼 수가 있다. 당시에 학교에 전화를 걸면 교환원이 받아 각 부서로 연결해 주는데 전화를 걸고 여자 교환원에게 "안녕하세요 ? 나 xx인데요" 하면 "아! 안녕하세요" 할 정도니 일보기가 상당히 편하다.
나는 고대 교직원은 아니지만 고대산악회 회원으로 안암산우회와 산행을 많이했고 89년 한국의 여행자율화가 실시된 뒤 내가 여행사를 할 때 박물관장, 처장, 학장, 교수, 교직원등 안암산우회 회원 30여 명을 인솔하고 중국을 북경, 심양, 백두산을 20일 가까이 다녀온 적이 있어 나는 자연스럽게 안암산우회 회원으로 인정을 받고있는 상황이라 하늘이의 경우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얼마 뒤에 나 부장으로부터 하늘이를 데리고 가라는 연락이 왔다.
내가 너무 유난을 떠는 것 같아 미안은 하지만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서둘러 신림에 가서 하늘이를 데리고 덕소로 가는 날 마침 원주 농장에는 주인이 외출 중이고 일하는 사람들이 사장님에게 연락을 받았다고 해서 하늘이를 데려오는데 민망함을 덜었다.
하늘이는 내가 운전하는 이스타나 승합차 옆자리에 앉아서 차창 밖을 무심히 바라보더니 슬그머니 나한테 몸을 기댄다. 이럴 때는 꼭 사람이 하는 행동 같다.
그런데 하늘이가 혹시 자기를 우리 집으로 데려가는 줄 알고 있는데 또다시 낯선 곳에 데려다 놓고 떠나버리면 나를 얼마나 원망할는지 걱정이 된다. 생각하다 보면 너무 골치가 아픈데 현재의 내 처지가 너무 어렵다 보니 자꾸만 자책을 하게 된다.
덕소 고대농장의 축산관리부 젊은 부부와 인사를 하고 하늘이 집을 한쪽 구석에 내려놓고 주위 정리를 하는데 우선 신림보다는 안정된 분위기라 하늘이가 적응만 할 수 있다면 여건은 좋은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하늘이의 적응이 문제다.
하늘이를 데려다 놓는지 2주가 지난 뒤 하늘이가 잘 적응하는가 보려고 농장에 들렸다. 그런데 역시 여기에서도 하늘이는 새 주인이 개집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밥을 줄 때도 긴 작대기로 밥그릇을 밀어서 준다고 하소연한다. 그 소리를 들으니 너무 미안해서 할 말이 없다. 새 주인 앞에서 나를 보고는 반가워서 길길이 뛰는 하늘이 모습이 너무 민망스럽다.
나는 흥분이 가라앉은 하늘이를 데리고 농장 뒤 갑산으로 산책을 나섰다. 하늘이는 신이 나서 앞장을 서는데 사람이 없는 곳에서 하늘이 목끈을 풀어 주었더니 앞에 가던 하늘이는 길옆의 모를 심어놓은 물이 가득한 논을 보고는 주저 없이 논 안으로 들어가 첨벙거린다. 놀래서 얼른 불러내어 다시 목줄을 걸었다.
하늘이를 데리고 산을 향해 올라가는데 평일인데도 여러 명의 등산객이 내려온다. 그중 한 아주머니가 하늘이를 보더니 삽살개라고 하며 반가워 한다.
개울가를 지나는데 하늘이가 멈칫거리며 내 눈치를 본다. 물을 좋아하는 하늘이가 개울 물에 들어가고 싶다는 표시다. 목줄을 풀어 주었더니 개울물에 들어가서 신나게 텀벙거리며 놀고 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한참을 놀게 한 뒤에 나오라고 부르니 주저 없이 물 밖으로 나오는데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데 말 잘 듣는 어린애 같아 신기한 생각이 든다.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들어간 뒤 다시 줄을 풀어놓으니 이 녀석은 신이 났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내가 시야에 보이지 않으면 얼른 다시 돌아와서 내가 있는 위치를 확인한다.
그리고 올라가다가 내가 앉아서 쉬면 내 옆에 와서 가만히 앉아있다가는 슬그머니 장난을 걸고 관심을 가져달라는 듯 물에 젖은 몸을 기대기도 한다.
그런 하늘이를 보고 있으니 나는 저절로 한숨만 나온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뒤틀어진 사업과 집안일도 감당을 못하면서 하늘이에게 신경을 쓰고있는 내 모습을 주위에선 한심한 눈으로 쳐 다 본다.
하늘이와 오래간만의 즐겁고 행복한 데이트를 마치고 농장으로 내려오니 결국은 또다시 슬픈 이별을 해야만 한다.
하늘이는 전과 달리 목줄에 묶인 채 집 앞에가만히 앉아서 멀어져 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그런 하늘이를 보고 나는 애써 외면했다.
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이런 아픔을 얼마나 더해야 하는가?
집에 온 뒤 며칠 후 농장 아주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하늘이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아주머니는 주저하더니
“사장님이 가신 뒤 하늘이가 집에 들어가서 일주일 내내 나오지도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결심을 했다. 내가 자꾸만 하늘이 주위를 얼씬거려 하늘이가 마음 정리를 못 하는 것 같으니, 이참에 매정하게 발을 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1년 넘게 소식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안암산우회 산행에서 만난 나 부장이 지나가는 말처럼 농장에 데려다 놓은 하늘이 얘기를 한다.
“하늘이가 아직도 주인을 못 사귀어 자기 몸에 손도 못 대게 한 대요, 그래서 개도 엉망이고 개집도 청소도 못 하고 부부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
자! 이일을 모른 척할 수도 없고, 아는 척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지?
몇 날 며칠을 고민했지만, 해결책이 나오지를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늘이가 나를 잊고 새로운 환경과 주인에게 마음을 줘야 하는데 저토록 일편단심 민들레를 부르짖고 있으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다른 개 중에도 하늘이 같은 개가 또 있을까?
TV를 보면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가 있다. 이 프로에는 유기견들에 관한 내용들이 나온다. 유기견이란 주인이 버린 개들을 말하는데 이 방송을 보면서 정말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그 사람들과 나는 과연 무슨 차이가 나는 것일까?
농장 부부도 고민이 많은 기색이다. 4~5십만 원 가는 비싼 한국 토종개라고 해서 받아 놓았더니 잡종 개만도 못해 일 년이 넘어가도록 개한테 손 한 번 못 대고 있으니 어떻게 좀 해달라는 눈치다. 그렇다고 이제 하늘이는 그쪽 소유니 알아서 하라고 할 수도 없고 중간에 소개한 용덕 형님, 나 부장 등에게도 미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긴 6개월 된 어린 개일 때도 길들이느라고 6개월을 온 힘과 정성을 들였는데 성견이 되었으니 더 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하늘이를 처음 분양받은 홍식이와 상의를 하였다. 자금 홍식이는 강화도 동막 해수욕장 끝머리에 소유하고 있던 2만 평 되는 산자락에 “테라롯지” 라는 커다란 흙집 펜션을 짓는 공사를 하고 있으면서 지난번 이쪽저쪽 분양해 주었던 진돗개, 풍산개들을 다시 모으는 작업을 하는 상황이라고 하니 그러면 하늘이도 다시 가지고 가라고 강권하였다.
그래서 하늘이는 결국 돌고 돌아 강화도 동막 홍식이네 펜션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하늘이가 동막이 자기의 근본임을 알기나 할까?
하늘이를 동막에 데려다 놓은 뒤 여러 번 다시 들렸는데 동막에서도 내가 다녀가면 하늘이는 제 집에 들어가서 일주일 이상 꼼짝을 하지 않고 나오지 않아 홍식이는 하늘이가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걱정하곤 했다.
한 번은 내 가 1인용 텐트를 가지고 가서 산밑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잔 적이 있는데 그때 하늘이를 묶어 놓지 않고 풀어놓았다. 그런데 그 녀석은 텐트에서 멀리 가지 않고 주위에서 놀다가 밤이 되니 내가 자고있는 텐트 입구에서 자리 잡고 편안하게 누워 있다. 텐트 문을 열고 하늘이를 쓰다듬어주니 하늘이는 내 손을 핥아준다.
내가 생각해도 하늘이는 조금 심한 녀석이다. 저하고 나하고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쩌자고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 매일 밥을 주고 귀여워해 주는 새 주인하고 빨리 친해져야 제 신상에도 이로운 법인데 참으로 답답하다.
그 뒤 홍식이 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늘이를 풀어놓았더니 뒷산을 헤매고 다녀 털이 엉망이라 손질을 해야 하는데 형이 시간을 내서 올 수 없느냐는 얘기다. 하늘이 얘기를 하면 나는 한 없이 약해진다. 그래서 나는 추석 전날 혼자서 강화도에 갔다. 차도 처분한 형편이라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갔더니 3시간이나 걸린다. 그래도 하늘이를 보러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인다.
동막에 도착하니 하늘이는 이 양반이 웬일인가 하고 반색을 하고 펄펄뛴다. 예상대로 털이 엉키고 행색이 말이 아니다. 삽사리 종류는 털이 많아 조금만 손질을 안 해도 털이 영켜 엉망이 된다.
하늘이는 식구들이라도 자기 몸에 손대는 것을 싫어해서 털을 빗겨주거나 목욕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늘이를 안아 주니 이 녀석은 내 얼굴을 핥는다. 반갑다는 지극한 마음의 표시다. 하늘이의 엉킨 털을 빗겨주고 가위로 잘라주려면 나도 힘들지만 한 시간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어야 하는 하늘이도 상당히 힘들 것 같은데 꼼짝도 안 하고 앉아있다.
강화엘 다녀온 뒤 나는다시 다부지게 마음먹고 1년 넘게 발길을 끊었다. 그런데 고대산악회 송년의 밤에 만난 홍식이가 하늘이가 며칠 전인 11월 16일 죽었다는 얘기를 한다. 그렇지 않아도 하늘이가 잘 있나 궁금한 것을 참고 있던 참인데 하늘이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하늘이는 태어난 것이 2005년 4월 5일이고 죽은 날이 2014년 11월 16일이니 9년 7개월을 살다 갔다. 개의 나이로 9살이면 사람의 나이로 60세가 조금 넘는 나이다. 아직은 더 살 수 있는 나이인데 조금 일찍 죽었다는 생각이 든다.
집사람은 하늘이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하늘이의 유별난 성격 때문에 평생을 힘들게 살다 갔다고 하고 홍식이는 하늘이가 우울증에 걸려서 빨리 죽은 거 같다는 얘기를 한다.
하늘이가 9년간의 한 많은 세상을 살고 가는 동안 나와 같이한 시간은 1년이 채 안 된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맺은 인연 때문에 하늘이는 주인을 못 잊고 평생을 새 주인을 거부하고 힘들게 한 세상을 살다가 갔다.
아! 나는 나중에 하늘이를 만나면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하나? 도대체 하늘이와 나는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드는데 시간이 지나서도 하늘이 생각을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