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의 犬生流轉(3-2)
*하늘이를 두고 오면서 흘린 눈물
하늘이와 인연을 맺은 지 일 년, 나는 인생의 말년을 하늘이와 같이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세상일이 내 뜻대로 되어주지 않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 사람들은 한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저런 많은 변화가 있음을 얘기 할 때 인생유전(人生流轉) 이란 말로 표현을 한다.
하늘이의 한세상을 돌아 보면 견생유전(犬生流轉)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었다.
먼저 살던 집은 사람이 살기는 조금 불편해도 하늘이가 거처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어 나는 행복했는데 새로 이사 가는 집이 아파트 3층의 작은 공간이라 하늘이가 있을 자리가 없다.
그래서 털북숭이 하늘이를 집안에서 기르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어림없는 일이고 옥상을 생각했지만, 누구 욕먹일 있냐고 집사람이 펄펄 뛴다.
생각다 못해 1층 주차장 구석에 개집을 옮겨 놓으려니 주위 사람들로부터 단박에 시비가 들어온다.
“여기에서 개를 기르시려고요?”
"아니, 갑자기 이사를 하게되어서 임시로...."
이사 첫날 낯선 환경에 밤에 개가 짖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해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주차장 구석에서 하늘이는 아침 출근하기 전과 퇴근 후 늦은 밤 잠시 나를 만나는 일 이외에는 하루 종일 불안한 상태로 묶여 있으니, 위축되어서인지 내가 가도 한참을 경계하다가 뒤늦게 아는 체를 한다.
사람이나 개나 정말로 못 할 짓이다. 아무래도 이 녀석을 어디엔가 보내야 할 텐데 보낼 곳도 마땅치 않지만, 가는 곳이 여기보다 못하거나 인정 없는 주인을 만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늘이를 데리고 어디 시골로 가버려?”
그렇지만 시골이라고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있을리 만무하니 생각과 고민만 깊어질 뿐이다.
그러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상의하는 용덕이 형님에게 전화했다.
“형님, 내 사정이 여차저차 한데 하늘이를 어떻게 하면 좋지요?”
다른 사람 같으면
“야! 너 참 별걱정을 다한다. 보낼 곳 없으면 어디 갖다 버려”
그렇지만 우리의 용덕 형님은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며 생각 좀 해보자고 한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전화가 온다.
형님 말씀이
“야, 우리 먼저 갔던 원주 그 농장으로 보내면 어떠냐? 농장 주인도 좋다고 하니 개로서도 그보다 좋은 곳이 없을 것 같다.”
지난번 안암산우회 40주년 산제 때 가서 하룻밤 자고 온 곳이니 그곳 사정이야 설명을 들으나 마나다.
그런데 마침 우리 하늘이를 분양해 준 개 아범 홍식이한테서 전화가 온다.
“형님, 고촌 농장에다가 공장을 지어야 해서 개들을 전부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는데 어디 보낼 곳이 없을까요?”
홍식이는 나보다 더 심각하다.
삽사리 두 마리, 풍산개 한 마리, 진돗개 두 마리, 모두 다섯 마리중 진돗개는 벌써 다른 곳으로 보냈는데 나머지 개들 때문에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중 풍산개를 우리 하늘이와 같이 원주 농장으로 보내기로 하고 날짜를 잡았다. 어차피 이별하려면 빨리하는 것이 낫다.
이틀 후 개들을 데리고 원주에 가기로 했는데 큰 개 두 마리와 개집까지 싣고 장거리를 간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내 승합차를 이용하기로 한 뒤 용덕 형님, 홍식이, 그리고 수원에 거주하는 농장주와 네 명이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저녁때 하늘이를 보니 가슴이 저려온다. 이제 이틀 후면 이별인데 나를 쳐다보는 하늘이의 맑은 눈망울을 보고 있으려니 더욱 기가 막힌다.
“하늘아! 내가 너를 어떻게 보내야 하냐?”
하늘이는 전에는 잘 먹던 밥을 이사 온 뒤엔 잘 먹지도 않는다. 나를 보더니 그제야 조금씩 먹다가 는 맥없이 앉아있는 나의 기색이 이상한지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쪼그리고 앉는다. 그래서 내가 머리를 쓰다듬었더니 갑자기 으르렁거린다.
나는 깜짝 놀라서 “이 녀석이 미쳤나?” 하는 생각으로 야단을 치려다가 마음을 바꾸고 개를 끌고 이별의 산책을 하기로 했다. 어린애 같은 하늘이는 조금전의 일은 잊어버렸는지 산책을 가면서 너무 좋아 야단법석이다.
“이별의 산책”
나는 우울하기 짝이 없는데 하늘이는 그저 좋기만 한 모양이다.
그런데 하늘이가 나에게 한 행동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이 녀석이 나와의 정을 떼려고 그런 행동을 했나 라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너무 섭섭하여 잠이 잘 안 온다.
11월 22일, 회사도 결근한 채 하늘이를 데리고 홍식이가 기다리고 있는 김포의 고촌으로 갔다. 차를 타고 가면서 하늘이는 버릇대로 창밖을 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저는 아마도 산책을 하러 가는 줄 아는 모양이다.
고촌에 도착하니 풍산이가 사납게 짖어댄다. 차 뒷문을 열고 개집과 풍산이를 태우려 하니 낌새가 이상한지 주인이 같이 가는데도 버티면서 타려고 하지를 않는다.
신사동에서 기다리고 있는 용덕이 형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풍산이가 심하게 멀미를 한다.
용덕이 형님을 만난 뒤 다시 수원 요금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농장 주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어제의 하늘이 행동을 얘기하니 홍식이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며칠 전 아는 선배에게 풍산이를 데리고 가라고 연락을 한 뒤 그분이 풍산이를 보기 위해 왔었는데 그 선배는 아파트에서 풍산이를 키울 생각을 하고 있어 조건이 맞지를 않아 무산됐다고 한다, 그런데 풍산이는 낯선 사람이 저를 데리고 가려는 낌새를 눈치채고는 손님이 간 뒤에 홍식이에게 으르렁거리고는 눈물까지 흘리더라는 얘기를 한다. 우리는 하늘이와 풍산이의 행동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얘기를 나누었다.
신림 요금소까지 가는 동안 풍산이는 차멀미하느라고 똥오줌을 싸면서 정신을 못 차리는데 하늘이는 앞 의자에 의젓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낯선 주위 경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운전하며 그런 하늘이를 돌아보려니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아!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산림 요금소를 나와 농장이 있는 산길로 접어드니 이제 이별의 순간이 점차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가듬이 답답해 진다.
농장에 도착을 한 뒤 차멀미하느라고 크로키가 된 풍산이를 차에서 내려놓으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개도 차멀미를 가열차게 한다. 이곳 농장에서 기르던 변견 두 마리가 텃세하느라고 정신없이 짖어대는데 농장 사람이 한마디 한다.
“삽사리와 풍산개가 왔으니, 너희들은 이제 찬밥이다.”
아무려나 그들은 그런 내막을 알기나 할런가?
먼저 제법 넓은 염소우리 안에 두 마리를 데리고 들어가서 풀어 놓으니 하늘이는 이구석 저구석 다니면서 염소 냄새를 탐색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분위기도 바꿀 겸 하늘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더니 신이 난 하늘이는 내가 멀리 가지 않는가를 살피며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아! 이런 곳에서 하늘이를 데리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아예 이곳에서 눌러앉아?
가야할 길이 멀어 먼저 오물로 범벅이 된 차를 물로 깨끗이 씻어 낸 뒤 우리는 떠날 준비를 하는데 아무래도 발길이 안 떨어진다.
풍산이는 염소 우리 안에 매어 놓고 하늘이는 마당 가에 끈을 길게 하여 개집 옆에 묶어 놓았으니 이제 떠나면 된다.
가기전에 하늘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하늘이는 벌써 눈치를 채고는 울지도 않고 제자리에 고정자세로 서있다. 내가 차 쪽으로 걸어가면서 뒤돌아보니 하늘이는 자기 집 앞에서 여전히 미동도 않고 하염없이 나를 쳐다보고 서 있는데 그런 분위기를 보고 용덕이 형님이 놀린다.
“너 잘하면 울겠다!”
“형님 그러지 마세요. 나 정말 눈물 나요!”
차를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던 하늘이의 모습이 뇌리에서 영 떠나지를 않는데 나는 아! 어쩌다가 내가 이런 처지가 되었나 라는 생각이 들며 심한 자괴감에 빠고 말았다.
*신림 농장에서 하늘이를 보고 오던 날
하늘이가 신림 농장으로 간지도 벌써 4개월이 넘었다. 그사이 두 번의 방문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새로 간 곳에 대한 적응이 잘 안되는 하늘이를 보면서 항상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오곤 하였다.
지난 1월 농장에 갔을 때는 하늘이가 처음 갔을 때와는 달리 새로 데려다 놓은 개들이 몇 마리 더 늘었다. 그런데 나중에 온 개들도 사람을 보면 꼬리를 치며 호의를 표시하는데 두 달이 넘은 하늘이는 꼬리치는 것은 고사하고 밥을 주는 사람까지 물어댄다.
그러다보니 개집 청소는 물론 사람들이 개 근처에 가는 것도 두려워하여 농장 사람들의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바람에 하늘이는 스스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
1월인데도 개집 바닥은 날 바닥으로 월동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어서 내가 가마니를 주워다 깔아주는데 한숨만 나온다.
주위에서는 이제 하늘이에 관한 관심을 접어 두라고 하지만 나 역시 그러고 싶어도 그게 잘 안된다.
너무 먼 곳이라 자주 가서 보기도 어려워 이번에 벼르고 별러 며칠 전에 마음먹고 하늘이를 보러 갔다. 막상 간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하늘와 나는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동안 살면서 강아지를 여러번 키웠지만 이런 일은 처음 경험한다. 어떤 때는 하늘이가 사람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서로 대화는 안 되지만 미묘한 감정까지 서로 느끼는 것 같아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처음 집을 떠나기전에 했던 하늘이의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애완동물에 대한 지나친 애정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을 갖고 있다. 서양의 어느 부자 할머니가 죽을 때 자기의 유산을 기르던 애완동물에 몽땅 남겨 주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 할머니를 조금은 정신 나간 할머니라고 생각한다.
그 돈을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쓰면 얼마나 값지고 보람된 일이겠느냐는 생각을 했지만, 할머니 처지에서는 그게 아니다.
그 할머니는 일편단심 자기를 따르고 정을 주던 애완동물이 더 중요하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중요할 리가 없다. 너무나 인간적이지 못한 처사라는 비난은 제삼자의 생각이지 할머니에게는 상관없는 얘기다.
점점 삭막해지는 세상, 부모·자식 간에도, 형제간에도, 더 나아가 부부간에도 마음의 벽을 쌓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져 우리는 점점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지금 세상은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세상은 살기 편해졌지만, 돈이 없어 좁은 방에서 온 식구가 부대끼며 살아가던 때가 우리는 그리워진다.
자식을 여럿 둔 노인이 자식들의 무관심 속에 혼자 살다가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죽은 뒤에 한참이 지나서야 이웃에게 발견되었다는 신문 기사는 이제는 별로 이야깃거리도 안 된다.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채 노후 대책이 전혀 안 되는 노인층의 숫자는 점점 늘어 가는 데 그분들의 희망 잃은 모습은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삭막한 세상에 우리는, 돈이 있으나 없으나, 능력이 있으나 없으나 한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으로 여기는 애완동물에 대하여 점점 관심과 애착을 두게 되는가 보다.
우리보다 앞서간 선진국의 사람들이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