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일기

과유불급이라고 했는데... (10-9)

남상태 2023. 6. 11. 13:43

내가 경비원 생활을 처음 시작 할 때 야간 순찰조의 파트너가 신참인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준다. “너무 앞서 가지 마세요!”
그 사람은 보아하니 내가 완전한 바닥 생활을 한 사람 같지는 않고 조금은 배운 것 같은데 이런 사람들은 아는 체하고 남을 무시하고 앞서 가려는 경향이 있어 이런 행동은 결국은 자신에게 비수가 되어서 돌아온다는 사실을 충고를 해준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 이치를 빨리 체득하는 것이 내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경비원 생활 중 제초작업은 힘든 부분이다. 각동마다 아파트 건물에 면접한 녹지대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그 정도를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공교롭게도 내가 속한 건물과 옆 동의 크기가 이 단지 내에서는 가장 크다.

비가 오고 나면 풀들은 신나게 키 재기 경쟁을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내려오는 제초작업 지시……. 작업 연장은 달랑 낫 하나, 키가 작은 풀은 낫 가지고 어려워 전지가위가 필요하다. 그런데 전지가위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판에 연장이 맞지 않으면 더 힘이 들고 잘못하면 다치기 십상이다. 급한 사람이 우물판다고 내 돈으로 전지가위를 사왔더니 주위에서 그 알량한 봉급 타 가지고 연장까지 사다가 일을 하느냐고 한심한 눈으로 쳐다본다.
전지가위를 사온 김에 너무 길게 자라서 눈에 거슬리는 쥐똥나무와 장미나무를 말끔하게 잘라 주었다. 그러다보니 나의 교대자와 주위에서는 은근히 말리는 분위기다. 이곳에서는 나 혼자만 근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그러면 다른 경비원들이 욕을 먹는다는 것이다.
아하! 그렇군! 이 나이 먹도록 그런 분위파악도 못하다니…….

제초 작업의 경우 요령 있는 사람들은 작업 시기를 계속 미루다가 막판에 겨우 하는 척 해서 남들이 두 번 할 동안에 한번으로 버티기도 한다. 순진한 나는 항상 솔선해서 일을 하다 보니 삼복에 고생이 막심하다. 그바람에 냉장고에 넣어둔 물이 턱도 없이 모자란다. 남들은 한번으로 끝난 일을 나는 벌서 두 번째 제초작업에 돌입했다.
고참이 보는 눈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르다. 순찰조 파트너는 이미 나의 이런 부분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 옆 동의 사람은 내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부지런하다. 경비원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일 욕심도 많은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남들은 제초작업도 겨우 하는 판인데 이 사람은 화단과 보도블록 사이에 고랑을 파서 잔디가 보도블록 쪽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차단을 하는 힘든 작업까지 한다. 시골 출신인지 일도 시원스럽게 잘도 한다. 그런데 이런 열심히 결국은 사고를 치고 말았다. 새벽에 근무 교대를 하기 위해 경비실에 도착하니 나의 교대 자가 어제 난리가 났었다고 하며 나보고도 지나친 제초작업을 하지 말라고 충고를 한다. 옆 동 근무자가 제초작업에 매진하다보니 보도블록에 자란 풀은 제초제를 뿌려서 풀들이 노랗게 죽었고 화단 안은 풀들을 완전하게 제거하기 위하여 흙을 모두 뒤집어엎는 바람에 이른 봄 씨 뿌리기전의 밭 모양이 되어 이를 보고 놀란 주민이 관리실에 신고를 해서 일이 커졌다고 한다. 당사자가 휴가를 끝내고 오면 책임을 물을 작정이라고 하는데 현장을 본 사람들은 힘들게 일하고 욕먹게 생겼다고 한탄을 한다. 목적 없는 열심은 등불 없는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제초 작업의 목적은 아름다운 화단을 가꾸는 것인데 아름다워야 할 화단을 흉측한 황무지를 만들어 놓았으니 내가 봐도 이해가 안 된다. 과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는데 이런 경우엔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경비원 생활은 24시간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 온 밤을 뜬 눈으로 지낸 뒤 아침에 집에 오면 눈을 좀 붙여야 하기 때문에 오전 시간은 그대로 지나고 점심 후에 시작되는 하루 일과는 시간이 반나절 밖에 안 되어 우물쭈물 하다보면 벌서 하루가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약속이나 개인적인 일을 보려면 큰맘을 먹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왔다갔다 하다보면 몸이 피곤하여 다음날 근무하는데 상당히 피곤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토요일이나 일요일 같은 휴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휴식 없는 일과가 계속 이어지다보니 완전히 일의 노예가 된 듯 한 느낌이다. 이런 생활을 10년 이상 해온 선배들을 보면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든다. 오래 한다고 진급이 되는 것도 아니고 월급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니 이런 생활을 오래 하려면 완전히 마음을 비우는 수밖에 없다. 경비원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산행이고 사진이고 여행 같은 것은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 속편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왜 살지?”

나는 전에 산행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산은 직접 오르는 산이 있고, 바라보는 산이 있고, 생각하는 산이 있다” 나는 이제 전에 올랐던 산 생각이나 하고 살아야 할 모양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참으로 여러 가지 직업들을 가지고 있다. 남이 부러워하는 직업도 있지만 모두들 기피하는 직업도 있다. 직업의 선택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도하지 않은 직업에 종사할 수도 있는데 이때 자기의 직업에 대하여 지나친 비하를 하다보면 스스로의 힘이 빠지게 된다.

근무를 하다보면 여러 직종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인터넷 쇼핑이 일반화 되다보니 택배회사의 이용 빈도도 상당히 많다. 하루에 30개 이상 택배를 받는 경우도 있어 덩달아 경비원도 같이 바빠진다. 새벽이면 신문 돌리는 사람,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 중국집, 피자집 배달원, 야채가게의 배달 차, 야쿠르트 아줌마, 전단지 붙이는 사람, 음식물 수거차, 쓰레기 수거차, 파지 수거차, 고물 수집 차, 세탁소 아저씨 등등 거쳐 가는 사람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은데 모두들 고급직업이라기 보다는 우리사회의 하급 직업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직종의 사람들이 하기 싫다고 모두 그만 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좋은 일은 잘난 사람들이 다하고 나는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이나 열심히 해야겠다. 나는 요즈음 그동안 자주 만나던 사람들과는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직업이 변변치를 못하니 주위 사람들도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다. 그토록 전화를 자주하던 이웃들도 소원해 지는 것은 내 직업 때문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역시 없는 자, 약한 자의 비뚤어진 심정 탓인데 이런 생각들이 쌓여서 결국은 있는 자에 대한 불만과 원망이 생기게 되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역시 잊지 않고 전화를 해주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분들의 고마운 관심은 어려운 고비를 넘기는데 상당한 힘이 되어 준다. 고마운 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