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생활을 하면서 (10-4)
내가 아파트 경비원을 한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 반응은 여러 가지다. 우선은 그리 축하할 직업은 못 된다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간혹 어려운 일이지만 마다않고 하려는 마음가짐이 훌륭하다고 칭찬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아파트 경비원을 하는 것은 우선은 내 자신이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택한 일이지만 내가 택한 일이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의 부담을 주게 된다는 사실은 그리 유쾌한 일은 못된다.
누구는 그 잘난 일을 하면서 동네방네 꼭 떠들어야 하느냐는 질책도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어찌 자기가 원하는 일만 할 수 있겠는가? 팔자가 기박하면 속절없이 일가가 패망하는 수도 있는데 나는 다행이도 아주 막가는 지경은 간신히 피한 운수인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어차피 살아가는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려고 애를 쓴다.
아파트 경비원 생활은 내가 처음 접해 보는 환경인지라 그 생활에 오래 젖은 사람들 과는 보는 시각과 느낌이 다르다. 내가 이런 생활을 얼마나 할런지는 모르지만 이런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게 마련이라 기록으로 남겨 놓고 싶은 생각도 들던 차에 동아일보 기자를 했던 후배가 조언을 해준다.
“형! 생활 속에 진실이 묻어나는 얘기들은 소중합니다. 이런 얘기들을 글로 남겨 놓는 것도 의미가 있으니 한번 써보세요”
“야! 창피하게 글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
“그렇지 않아요, 나의 경험에서 하는 얘기입니다. 있는 자는 없는 자의 아픔을 모르고, 없는 자는 있는 자의 고민을 모릅니다”
맞는 얘기다. 우리는 자기의 세계에서 살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경비원은 24시간 계속 근무다. 휴식시간은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각 한 시간, 그리고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의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휴식시간은 겉치레에 불과하다.
초소 안에서 갖는 식사시간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방문객들로 해서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가 없다. 더구나 시설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직접 식사를 해먹어야 하는 과정은 옛날 동계등반 가서 좁은 텐트 안에서 밥을 해먹던 기억이 나는데 식사를 하고 나면 힘이 들어 힘이 쭉 빠질 지경이다.
밤 12시부터 4시까지의 휴식 시간도 그리 만족한 상황이 아니다. 누워서 잔다는 것은 사치일 뿐이고 의자에 앉아 눈만 감고 잠을 청하는 이 4시간 역시 편안하게 지낼 수가 없다. 우선 그 4시간 가운데 1시간은 2인 1조로 단지 내 순찰을 돌아야 한다. 12군데의 체크 포인트는 순찰 중 빠져 나갈 구멍을 주지 않는데 무전기, 플래시, 체크기를 손에 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번부터 포인트 체크를 하며 오밤중의 순찰을 계속한다.
그리고 놀라운 일은 1시, 2시에 노크도 없이 초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면서 택배를 찾으러 오는 사람, 낮에 맡긴 물건을 외출하고 새벽에 들어오면서 근무자를 괴롭히는 사모님, 도무지 개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음에 놀래는데 그들의 마음속에는 경비원이 인격체의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 같다.
내 순번의 순찰을 끝내고 다음 교대자에게 인계하기 위하여 교대자 초소에 가면 환한 불빛아래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잠들어 있는 初老의 근무자 모습을 바라보면 차마 그를 깨우기가 어려워 가슴이 아려 온다.
아파트 경비원은 가장 약자이다. 반장과 실장, 소장, 그리고 아파트 주민, 동대표 모두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이 기본이다. 절대 맞서서 시비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살아남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며칠 전 동대표 회장이 소집을 하여 근무자가 모두 모여 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동대표 회장은 대단한 존재다. 실장이고 소장이고 그의 비위를 거스르면 버티기 힘든다. 30명 가까운 인원이 회의실에 모여 간담회라고 하는데 이 때 눈치 없이 예민한 얘기를 건의랍시고 했다가는 후환의 두려움에 몸부림을 쳐야한다.
예를 들어 휴식 시간에 잠을 잘 자게 해주십시오, 소모품 지급을 제때에 잘 해주십시오, 등등 꼭 해야 할 얘기를 했을 경우 이 동대표 회장이 우리 경비원이 소속된 경비관리업체에 얘기를 하면 그 후유증은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나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지만 경비 업체에서는 1년 단위로 아파트와 계약기간을 연장하려면 동대표에게 절대적으로 읍소를 해야 한다. 그래서 경비원들의 철없는(?) 소망 때문에 동대표 회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경우 이를 응징하기 위하여 경비원들을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넣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오밤중에 암행 사찰을 해서 근무 중 졸지 않는가, 복장은 단정한가, 기타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가를 감시하고 적발 시에는 가차 없는 제재에나 퇴출을 시키는가 하면 어느 회사에서는 사장이란 사람이 밤중에 이틀거리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경비원들을 모두 집합시켜 놓고 된소리 안 된 소리 계속 떠드는 바람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내가 만약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과연 경비원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래서 만약 내가 그만 둔다면 주위에서는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
“음 잘난체 하더니 역시...”
그런데 이런 약자의 경비원들 사이에도 말없는 세력 다툼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다. 나의 교대 자는 나와 나이가 같다. 이 아파트 경력만 하더라도 5년 이상 근무를 하였고 나이도 많아 고참중의 고참인데 그런 관계로 주위 경비원들 사이에 떠도는 얘기에 의하면 일은 잘 안하고 목에 힘만 주려고 한다는 소문이며 내 전임자도 자기 휘하에 놓고 부리다 싶이 했다고 한다.
이 사람이 나한테도 슬슬 태클을 걸기 시작한다. 인계를 하면서 지시 비슷하게 하고 무언가 부족하다 싶으면 야단치듯 얘기를 한다. 어느 날 미명의 아침에 일은 벌어졌다. 새벽 5시에 교대하기 위해 경비 초소에 도착을 하니 인상을 쓰면서 나를 나무란다. 음식물 쓰레기 스티커 소모 기록은 발생하지 않은 날에도 0표를 해야 하는데 내가 하지를 않아 자기가 대신했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이성을 잃었다. 평상시 꼭 존댓말을 하던 나는 큰소리로 어투부터 바꾸면서 나리를 피웠다.
“야! 너 이래도 되는 거야? 내가 모르면 알고있는 네가 가르쳐 주어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 언제 나한테 얘기 한마디 해 주었어, 이러면 안 되지”
순간 나는 그 사람이 조금만 거슬리게 나오면 이단옆차기라도 들어가려고 자세를 낮추었다. 자칫했으면 심야의 결투가 벌어질 번 한 것이다. 나의 기세에 눌렸는지 그는 아무소리 못하고 우물쭈물하더니 그대로 가버린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다음부터 나한테 아주 싹싹하게 잘하는 것이다.
이성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준이 되는 마음가짐이다. 사람이 흥분을 하여 이성을 잃게 되면 무슨 일을 저지를 줄 모른다. 이성이 감성으로 기울어지면 우리의 마음은 천사가 되지만 이성이 원망과 저주로 기울어지면 악마가 되고 만다. 이러한 이중성은 우리의 마음속에 항상 존재를 하기 때문에 순간의 간정을 억제하기 못하고 뜻밖의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아! 누가 누구를 흉볼 것인가?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도 나름대로 자기의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런 다툼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인생은 한마당의 연극과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어느 연극의 연기자로서 연기를 하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그러나 저러나 경비원 생활 열심히 하려면 허리가 아프지 말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걱정이다. 내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니 후배가 미국에서 오면서 구루코사민 한병을 갖다준다. 그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워 가슴이 뜨거워 진다.
그래 목마를 때 물 한 모금이 정말 고마운 거라고 누군가 그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