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

남상태 2023. 6. 3. 06:53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참으로 순간이다. 모진 것이 사람의 생명이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죽을 운명이 되면 참으로 허무하게 목숨을 다할 수도 있다.

8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사는 동안 어떻게 안전하고 편안하게만 살 수 있겠냐 만은 그러나 사람에 따라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무난하게 한세상을 살다가 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살면서 생사의 순간을 넘긴 것이 관연 몇 번이나 되었나 생각을 해 보았다.

 

6.25가 발발한 것은 1950 6 25일이다. 그 당시의 내 나이가 초등학교 2학년, 8살 때 일인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살고 있던 집은 영등포 시장 근처, 화창한 일요일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 할 일이 없어 친구 집에 놀러가는 길에 비행기 한 대가 하늘 위에서 빙빙 돌고 있다. 뚝 넘어에 여의도 비행장이 있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친구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그 비행기가 갑자가 곤두박질하면서 내가 있는 곳을 향해 기총소사를 한다. 나를 향해 떨어지는 총탄에 어린 나는 혼비백산해서 근처 집 처마 밑으로 숨었다. 그리고 나서 그 비행기는 여의도 쪽으로 가더니 비행장 위를 오르내리며 또다시 총탄세례를 퍼 붓는다.

 

그 때 놀란 생각을 하면 지금도 섬뜩하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총탄이 나를 다치게는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총탄 하나가 내가 서있던 바로 옆의 집 굴뚝을 뚫고 들어가 부엌에서 혼자서 아침식사를 하던 아주머니의 상다리에 맞아 상이 박살이 났다. 놀란 아주머니가 밖으로 뛰어 나와 소리를 질러 동네 사람들이 부엌에 들어가 보니 난리도 아니다. 그 때 만약 그 총탄에 내가 맞았으면 나는 아마 짧은 생을 마감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며칠 후 인민군들이 서울에 들어 오자 급하게 피난간 곳이 영등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시흥 외할머니 댁이다

들판 외딴집이라 외사촌댁 어린 형제들은 학교엘 안가니 매일 들판을 헤메며 노는 일이 일과다

이때 가장 무서웠던 것은 심심하면 벌어지는 전투기들의 공중전이다. 적기와 아군기가 오르 내리며 기관총을 쏘아 대는데 들판에서 놀던 우리는 피할 곳이 없어 할수없이 논두렁에 숨었다.

공중전을 하는 전투기 들은 앞 비행기를 따라 오르내리면서 사정없이 쏘아 댄다. 기총 소사에 대책 없이 노출된 우리는 죽고 사는 것이 참으로 순간의 일이었다.

이때도 나는 운 좋게 죽지 않고 살았다.

 

그리고 지금도 잊지 못하는 절체절명의 위험한 순간은 63년, 대학 산악부 들어간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학교 부실에서 혼자 앉아 있다가 문득 바위가 하고 싶어서 혼자서 인왕산 암장엘 갔는데 막상 가보니 사람은 나밖에 없다. 겁도 없이 맨몸으로 혼자 바위에 붙었다. 지금은 인왕산 암벽코스를 자유롭게 출입을 못하는데 그 당시는 평일에는 사람도 없고 출입에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다.

 

반경이라는 당시에 해보지도 않은 어려운 코스를 혼자서  힘들게 통과한 뒤 정상아래 마지막 부분에 도착을 하였다.

직벽코스를 오르는데 확실하지 않은 홀드와 스탠스가 초보자인 나에게는 감당이 안 된다. 바위에 매달려 위를 보니 꺾어진 윗 부분은 보이지 않고 아래는 천야만야한 낭떨어지라 그야말로 오도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불안한 자세로 계속 버티다가는 힘이 다해 결국은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사는 방법은 미세한 홀드에 걸친 손가락 끝와 불안정하게 디딘 워카 끝 부분을 믿고 위로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만약 손끝이 몸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면 그대로 추락이다. 그리고 위에 올라간다고 평탄한 지역이 나올지도 의문이다.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면 평상시 관심도 없던 하느님, 부처님 등 절대자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신의 이름을 떠 올리며, “제가 살아서 올라갈 수 있다면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절박한 애원과 함께 죽을 힘을 다해 몸을 끌어 올리는 순간 내 몸은 거짓말처럼 위로 쑥 올라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면, 그리고 정신없이 정상을 향해 올라간 나는 맥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죽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때 신들에게 약속한 은혜를 나는 아직도 갚지를 못하고 있다. 오래된 일이라 신들도 그 약속을 잊고 계실라나?

 

1985년 동계에베레스트 원정때의 일이다. 대장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원정대에 참가를 했는데 혹한과 눈보라로 날씨가 나빠져 정상공격이 어려워지자 대원들은 전부 철수 시키고  6,400m 캠프 2에 혼자 남겠다고 하니 의리의 3학년에 재학중인 박성우 대원이 저도 남겠다고 자청한다.  그래서 대원들을 전부 하산 시킨 뒤 캠프를 지키고 있는데 엄청난 폭풍이 몰아치면서 텐트 밖을 나갈 수 없는 영하 30도가 넘은 날씨가 며칠이나 계속되어 우리는 각자의 텐트안에서 왕래도 못한채 언제 날라갈지 모르는 텐트 안에서 사흘간 버티는 동안 나는 녹음기에 유언까지 해 놓았다. 만약 텐트가 날라가기라고 했으면 그대로 동사다.

 

우리가 동계시즌 등반을 하기전  추계 등반 시에 정상공격을 하고 내려 오던 인도 육군팀의 멤버 다섯 명이 8천 미터 사우스콜에 내려와 보니 쳐놓았던  텐트들이 다 날라가서 내려오지 못하고 사우스콜에서 전부 동사를 하였다.

시체 인양 능력이 안되는 인도팀은 그 사고후 등반을 하던 일본 팀에게  죽은 시체들을 아래로 굴려 달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굴러 내려온 시체들중  장교 한명의 시체만 가져가고 나머지 멤버는 우리가 있던 캠프 2에서 3로 가는 길가에  눈으로  묻고 철수를 하였다.

 

그런데 동계시즌엔 눈이 오지 않고 바람만 분다. 그러다 보니 시체 한구가 계속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덮혀있던 눈이  날라가서 노출이 되었는데 한 달간 그 길을 계속 오르내리던  우리 팀에게 발견 되었다.

우리팀 멤버들은 어쩔 수 없이  노출된 시체 옆을 계속 오르내리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사투를 벌리고 있는 캠프 2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현장이 있어 이제 그 일이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그 당시는 생사의 기로에 섰던 위험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인생 말년에 비엔티안에 와서 살면서 어느날 새벽 위험한 고비를 또 한 번 넘겼다.

새벽 5, 자전거를 타고 박물관 앞 편도 4차선의 넓은 길을 달리고 있었다. 새벽길은 차가 없는 대신 간혹 지나가는 오토바이나 자동차들이 무섭게 달려 간다. 7~8 km는 보통이다. 그래서 나는 다니는 차들이 없어도 갓길로 바짝 붙어서 라이딩을 한다.  라오스의 개들은 거의 풀어놓아 기르는데 이 개들은 낮에는 더운 날씨에 축 늘어져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별 관심이 없다. 사람들 역시 길가 그늘에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개들에 대해 별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제는 새벽에 길가의 집 앞에서 청소를 하는 주인 옆에 있던 커다란 개가 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자 갑자기 큰소리로 짖으며 벼락 같이 달려든다. 이녀석은 서늘한 아침에 주인과 같이 있다 보니 용기가 생겼는지 돌발 행동을 한 거 같다.

맹렬하게 달려드는 위세에 위협을 느낀 나는 순간적으로 오른쪽 발로 개를 찼는데 자전거가 중심을 잃고 왼쪽으로 넘어지려고 한다급하게 자전거 핸들을 잡으면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순간 제어가 안된 자전거는 비틀거리며 차도 1차선까지 간뒤에 전복되고 말았다차도 한 가운데 넘어지는 순간, 나는 뒤에서 달려오는 자동차 생각을 하면서

아 나는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 한대 없는 새벽길을 고속으로 달려오던 차가 갓길로 가던 자전거가 갑자기 대각선으로 달려들어와서 넘어지면 차 운전수도 어쩔 수 없다큰 댓자로 널부러진채 뒤를 보니 천만다행이도 달려오는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안 보인다.

얼른 일어나 갓길로 나오면서 개를 보고 소리를 치니 옆에 있던 개 주인도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때 드는 생각,

죽고 사는 것은 그야말로 순간이구나!"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또 죽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자전거를 타고 나가려고 하니 온 몸이 쑤시고 아프다아마도 어제 살려고 용을 쓴 후유증이 이제 오는 가 보다그래서 아침 운동은 쉬기로 했다.

 

 

▼  아래 사진은 사고 이틀 후에 다시 가서 찍은 현장 사진이다.  자전거가 있는 장소에서 좌측 1차선의 화살표 근처에 넘어졌다.  다시 가서 현장을 봤더니 더 아찔하다. 새벽에 가끔 지나가는 차들은 80km 이상으로 달린다. 

 

중에 내가 주의하지 않았던 점이 무엇이였나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특별히 잘 못한 것이 없다. 평상시 같으면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났고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 그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사실 이 나이에 죽는다 해도 별로 억울 것은 없지만 먼 타향에서 사고가 나면 식구들이 고생을 한다

 

그렇다고 위험하다고 집안에 틀어 밖혀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다고 사고가 안난다는 보장도 없다. 집안 목용탕에서 넘어져 뇌진탕으로 죽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어차피 죽고 사는 것이야 말로 타고난 운수소관이다. 

 

사고 이틀 후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목격한 사고 내용이다. 

남부터미널 근처를 지나가는데 앞에서 덩치가 제법 큰 흰 개 한마리가 길을 건너고 있다. 차들이 휙휙 지나가는데 그 개는 차에 별 신경을 안쓰고 도로를 가로 질러 건너다가 급하게 옆을 스쳐가는 자동차에 움찔 놀란다. 그리고 나서도 계속해 건너가기에 저 개가 참 둔하고나 생각하는 순간 1톤 트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개를 드리받는다. 드리고 다시 넘어진 개를  타고 넘은 뒤에는 뒤도 안돌아보고 그대로 달려가 버린다.

 

그 운전수가 급히 차를 세우면 정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뭐 저런 사람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 개는 길게 누워 꼼작 못한채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뒤이어 차들은 계속 지나가는데 어떻게 해볼 방법은 없다. 어차피 그 개는 살기는 틀렸다. 계속되는 개의 비명 소리를 차마 듣기 어려워 그 자리를 떠나면서 지난 아침의 내가 당할 수 있었던 일을 이 개가 대신 당한 거 같아 마음이 너무 아프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새벽길의 라오스 도로에서는 로드킬 현장의 흔적을 많이 볼 수가 있는데 오늘 눈앞에서 본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다. 그 개가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